[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 ‘병든 마음’의 사회학… ‘우발적 살인·묻지마 범죄’ 배후세력은 스트레스

입력 2012-07-22 19:28


지난 4월 30일 이모(16)군과 홍모(15)양은 서울 창천동 창천근린공원에서 대학생 김모(20)씨를 둔기로 때리고 칼로 40여회 찔러 살해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이다. 수사 초반 이 사건이 ‘사령(死靈)카페’와 ‘오컬트(Occult)’문화와 관련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방경찰청 프로파일러들은 “가해자들이 부모로부터 심한 폭력을 당하거나 정서적으로 방임된 경험이 있으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며 불안한 심리상태가 범행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달 20일 여대생 윤모(27)씨는 서울 반포동의 한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고 근처 아파트로 가 자갈로 자동차 문짝을 긁었다. 벤츠·아우디 등 수입 자동차와 고급 국산 자동차가 대상이었다. 윤씨는 2시간 동안 아파트 주차장을 돌며 30여대의 고급 승용차에 자갈로 흠집을 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 윤씨는 다음날 경찰에 자수했다. 윤씨는 경찰에 “경제적으로 힘들고 시험에 연이어 떨어진 상황에서 고급 승용차를 보니 갑자기 화가 났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인관계, 직업상 실패나 좌절, 승진 누락, 경제적 요인, 부모의 다툼과 갈등 및 가족 내 문제, 결혼 등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범죄를 촉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폭력물과 포르노그래피 등 자극적인 환경에 접촉하는 빈도가 높아진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범죄로 이어진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도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불특정 피해자를 공격하게 되는 피의자의 불안한 정신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해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스트레스로 인한 ‘우발적 살인’ 혐의자는 2000년 306명에서 2005년 319명, 2010년 465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우발적 방화’도 2000년 347명, 2005년 427명, 2010년 583명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특히 폭행·상해·살인·방화 등 표출적 범죄가 발생하는 동기는 ‘우발적 동기’와 ‘현실 불만’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범죄행태가 사체를 훼손하고 절단하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장기적인 스트레스 노출과 관련이 있다. 스트레스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평소 합리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도 자신이 비양심적인 행위를 해 처벌받게 될 것이라는 합리적인 사고 회로에서 벗어나게 된다.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은 사람은 민감해지고 감각을 추구하게 되며 인지적인 판단 능력의 장애를 겪어 범행 등 적극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피의자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지적한다.

백석대 법정경찰학부 김상균 교수는 “스트레스는 누구나 받을 수 있지만 자주 노출되면 생리학적으로 아드레날린 등이 많이 분비돼 신경질적으로 바뀌게 된다”며 “거시적으론 경제적 불평등, 실업 문제 등이 해결돼야 하고 학교, 직장 등 사회 공동체에서 분노를 조절하는 법이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인섭 박사는 “개인적인 여건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에 따라 각자가 스트레스를 풀어가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며 “특히 해소 자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스트레스가 막연한 사회적 적개심으로 쌓여 사소한 자극에도 터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