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1부) 비상등 켜진 개인의 정신세계] (1) 정신질환 불감증 걸린 사회
입력 2012-07-22 19:21
‘정신병자’ 주홍글씨에 쉬쉬… 치료도 보호도 손 놔
국인의 정신이 병들고 있다. 그야말로 정신건강 난국시대다. 생각과 감정에 탈이 생겨 마음이 건강하지 못함은 물론 그로 인해 이상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는 정신장애인이 늘고 있다. 일생동안 정신질환을 한 번 이상 앓는 사람이 성인기준 10명중 3명 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을 정도다.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학교에선 학생이 교사에게 대들고, 성격장애자에 의한 엽기적인 성폭행 및 살인 사건도 자주 발생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를 놓고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 그리고 불감증이 빚어낸 총체적 결과”라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사회병리 현상이란 진단이다.
정신질환은 이제 더 이상 숨겨야 할 병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신질환 치료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여전히 방치되는 경향이다. 환자와 보호자들도 ‘정신병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숨기기에만 급급하고 치료는 뒷전으로 밀쳐두기 일쑤이다.
◇성인 10명 중 3명, 평생 정신건강 문제 한 번 이상 경험=대개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헛소리를 하거나 혼자 실없이 웃고 다니는 정신병적 장애인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같은 진짜 정신병적 장애인은 소수다.
정신병적 장애란 속칭 정신분열증으로 알고 있는 조현증을 비롯해 분열형 정신장애, 분열정동장애, 망상장애, 기타 단기 정신병적 장애를 아우르는 용어다. 여기에 해당되는 환자는 전 인구의 약 0.5%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에는 이 밖에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대표되는 다양한 성격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공황장애 등 불안장애, 우울증 조울증 등 기분장애, 신경성 식욕부진증 등 섭식장애(식이장애), 알코올 및 니코틴 의존증 등의 물질 관련 장애, 건강염려증 등 신체형장애, 어린이에게서 문제가 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각종 소아청소년 정신장애, 노인성 치매 등도 포함된다.
보건복지부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맹제 교수팀에 의뢰, 지난해 7월 19일부터 11월 16일까지 4개월 동안 전국 18∼74세 성인 6022명을 표본으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최근 1년간 조현증과 우울증 등 25개 정신질환을 한 번 이상 경험한 사람은 전 인구의 16%인 577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알코올과 니코틴 사용장애를 제외할 경우에도 전 인구의 10.2%로 5년 전(2006년) 조사 때의 8.3%보다 1.9% 포인트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바탕으로 추계한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비율)은 27.6%로 성인 10명 중 3명꼴이었다. 알코올과 니코틴 사용장애를 제외할 경우에는 14.4%로 성인 6명 중 1명꼴이었다. 이로 인해 성인의 15.6%는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고, 3.3%는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수팀은 최근 1년간 자살 시도자가 10만8000여명인 것으로 추산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병원을 방문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자신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상담 또는 치료를 시도하는 경우는 전체 정신질환 경험자 중 15.3% 선에 그쳤다. 이는 정신질환자 10명 중 약 8.5명이 정신건강 의료서비스를 한 번도 이용한 적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사회 곳곳에 만연=정신장애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신질환에 걸리는 이유를 나약한 정신력과 자제력 부족으로 몰아가는, 그릇된 사회 분위기와 불감증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0년 대국민 정신질환 태도조사’ 보고서를 들여다보자. 전국 15세 이상 청소년과 성인 남녀 1109명을 표본으로 조사한 이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90.1%가 ‘정신질환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다’란 설문에 그렇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이들 2명 중 1명꼴인 46.3%는 ‘정신질환에 걸리는 가장 큰 원인은 자제력과 의지 부족 때문이다’고 응답했다. 게다가 ‘내가 정신질환에 걸리면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71%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편견도 심하다는 뜻이다.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현실을 국가 정신보건 관리사업 대책이 쫓아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 예로 우울증을 앓는 서울 지역 청소년이 2008년 2.4%에서 2009년 3.5%, 2010년 4.6%로 계속 늘고 있다는 조사 결과(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사업단 자료)를 들 수 있다. 예방 교육 및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영철 교수는 “모든 정신질환은 기본적으로 뇌에서 발생한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도 “그동안 성격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해 왔지만, 사실상 정상성격과 이상성격은 연속선상에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