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 “한국, 김치 다음 세계최고 ‘자살률’…알고 있느냐”

입력 2012-07-22 21:15


국민일보 ‘사회적 관심 촉구’ 기획시리즈

정신질환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공동체를 위협할 만큼 적신호가 켜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늘어만 가는 각종 불안장애, 중독증은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 난국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일보는 정신건강을 갉아먹고 있는 마음의 병이 무엇인지 살피고, 해법을 찾는 장기 기획 시리즈를 매주 한 차례 연재한다. 1부-비상등 켜진 정신세계, 2부-정신질환 부추기는 사회, 3부-해법과 대책 등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대한사회정신의학회 후원으로 연재된다.

“결국 암에 걸린 한국 노인들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얘기 아닌가. 정말 끔찍한 이야기다. 한국은 충분히 부유한 나라다. 왜 이런 일을 방치하는가. 납득할 수 없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서울 방이동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의실. 한국의 정신건강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2주일 일정으로 방한한 마이클 보로위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노동사회복지국 수석정책분석가는 협회 측 설명을 듣다가 한마디 했다.

그는 “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전설적이다. 한국 하면 ‘김치’ 다음으로 유명한 게 ‘자살률’인 걸 알고 있느냐”고 반문한 뒤 “정신건강 관련 정부 지출은 턱없이 낮고 서비스는 후진적이다. 유럽에서 수십 년 전에 사라진 요양시설을 열심히 짓고 있는 게 한국”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자살률은 드라마틱하게 치솟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살률은 1990년 인구 10만명당 7.6명에서 2001년 14.4명을 거쳐 2010년에는 31.2명까지 늘어났다. 20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2010년 기준 매년 1만5566명, 하루에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계산이다. 70·80대 노인 자살로 가면 이 수치는 10만명당 84∼123명까지 높아진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해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고작 23억원에 그쳤다. 3000억원이 넘는 이웃 일본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정신보건 예산 전체를 따져도 241억원(2011년 기준) 밖에 안 된다. 자살률이 높아 일명 ‘자살벨트’로 불리는 강원, 충남북 중 충북 지역에는 아예 자살예방센터가 없다. 나머지 두 곳에도 센터가 들어선 건 1~2년 전에 불과하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은 “자살률은 한 사회의 정신건강을 보여주는 지표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한국사회의 총체적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뜻”이라고 걱정했다. 자살자의 80%는 우울증, 불안, 알코올 남용 등 정신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다.

해법은 한 가지일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는 데 동의한다. 현재 정신보건 시스템은 1∼2%의 중증질환자 위주로 짜여 15%에 달하는 경증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환자는 사실상 방치돼 왔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낙인과 편견도 심했다.

이종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는 “시골에서 정신분열증 아들을 10년 이상 방에 묶어둬 반신불수를 만든 사례를 목격한 적도 있다. 발병 1∼2년 후에야 병원을 찾는 일은 부지기수”라며 “그나마 다수의 정신질환자들은 점쟁이, 무당이나 사이비 종교집단, 부랑인 시설에 의지하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영문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은 “정신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 양육, 노동생산성, 건전한 공동체 형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라며 “우리 사회가 이런 합의를 토대로 이제 관심과 투자를 높일 때”라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