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양기호] 총리관저 앞 금요데모

입력 2012-07-22 18:40


아침마다 읽는 일본 신문에는 한국에 없는 지역별 숫자가 일기예보처럼 실려 있다. 전날 오전 9시에 측정한 방사선량이다. 최근 측정치를 보면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현 원자로 주변 동네는 3.13마이크로시벨트(μ㏜), 후쿠시마시 0.57, 센다이시 0.056, 도쿄도 신주쿠구 0.048μ㏜다.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흉부 X선 1회 촬영 50, 위내시경 1회 촬영 6000, 1인당 평균 연간 자연방사선 26만μ㏜ 등이다. 50만이면 혈중 임파구 파괴, 100만이면 구토증세, 700만은 사망이다.

건강에 민감한 일본인들이 매일 날씨 보듯 지역별 방사선량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화력발전소만 가동하는 오키나와에 인재와 기업들이 몰리기도 한다. 택시비가 가장 싼 오키나와가 전기요금만은 일본에서 제일 비싸지만 원자력발전소도 없고, 전기 부족으로 인한 계획정전도 없는 점이 매력이다. 오키나와에 회사를 옮기고 아예 가족까지 이사하는 경우도 있다.

원자력 발전을 지속할지 여부는 일본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일본 정부는 원자력 발전 비율을 결정하는 공청회를 전국 각지에서 열고 있다. 2030년 원자력 발전 의존도를 0%, 15%, 20∼25%로 나누어 의견을 듣는 것이다. 작년 후쿠시마 사태 직전에는 26%였다. 신청자 중 선택의견을 3명씩 발표하게 되어 있는데 전력회사 직원들이 나서서 가장 높은 20∼25%안을 주장해 일반 참가자들이 여기가 회사설명회냐고 고함을 지르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후 정부는 도쿄전력 직원들이 설명회에서 의견 발표를 못 하도록 금지령을 내리는 해프닝마저 겪었다.

3·11 대지진과 원자로 폭발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겪은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 자체에 대해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전기 부족과 전기세 부담을 이유로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6월 중순 후쿠이현 오오이 원자로 재가동을 서둘러 결정했다. 문제는 12만∼13만년 전 지진 흔적이 있는 활(活)단층이 원자로 바로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는 점이다. 놀란 정부는 원자력안전보안원에 재조사를 요청한 상태다. 활단층이 발견되면 법률상 자동 폐쇄된다.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일본 정부, 재계, 관료의 기득권 집착에 화가 난 시민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리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3월 초 300명이던 시위대가 급기야 10만명으로 불어났다. 도쿄뿐만 아니라 오사카, 센다이, 삿포로 등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열리고 있다. 7월 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전후 최대 규모의 탈원전 집회가 열렸다. 여름 땡볕에도 17만명이 자리를 지켰다. 노벨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원전 재가동 철회를 요구했다. 원전 반대 서명에는 750만명이 참가했다.

총리 관저 앞 금요 데모에는 한국의 촛불시위처럼 가족 단위나 친구끼리 참가하는 사람이 많다. 트위터나 유튜브로 현장을 생중계하기도 한다. 실제로 트위터를 보고 귀가도중 들른 회사원도 적지 않다. 1960년 안보투쟁 이후 대중집회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은 50여년 만에 처음이다. 데모 문화가 없는 조용한 일본인들이 원자로 재가동을 쉽게 결정한 노다 정권에 단단히 화가 난 셈이다.

노다 총리는 일단 금요일 저녁 외출을 자제하고 있지만, 주변의 엄청난 데모 함성에 신경이 쓰이는 모습이다. 경호원에게 “소리가 크네”라고 발언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원자로 재가동이 일반시민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세 증세 법안 통과, 원전 재가동 결정, 센카쿠열도 국유화,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 등 공감 없는 단타식 정책 결정에 민심은 화나 있다. 서울에서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총리관저 바로 옆 금요데모뿐만 아니라 간절한 역사의 함성이 노다 총리의 귀에 더 크게 들리기 바란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