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오만원 선생
입력 2012-07-22 18:34
서울에서 일하게 된 미국인이 “한국 사람들은 왜 제가 밥을 먹었는지 아닌지에 관심을 갖나요?”라면서 의아해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 그는 “밥 먹었냐?” “언제 밥이나 먹자”는 ‘잘 지내고 있냐’라는 안부 인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밥’은 인사말이 될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중요하다. 가족을 의미하는 ‘식구(食口)’는 ‘같이 밥 먹는 입’이다. 그러기에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아주 특별하다. 인간관계에서 ‘정(情)’을 본격적으로 나누는 사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술은 마셔도 밥은 먹지 못한다.
살아온 세월이 늘면서 아는 사람도 많아진다. 좋은 사람도 참 많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같이 밥을 먹고, 더 나아가 사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런데 주머니 사정은 빤하니 만나면 본의 아니게 눈치 볼 때가 있다. 혹은 마음이 앞서서 호기 있게 한우 꽃등심에 와인까지 샀다가 한 달 내내 손가락 빨고 사는 경우도 있다.
지인 중에 ‘오만원’이라는 분이 있다. 성이 ‘오’, 이름이 ‘만원’이 아니라 하루 5만원 한도 내에서 맘껏 밥을 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1명이든 100명이든 정확히 총합 5만원만큼만 화끈하게 산다. 만약 어제 사주고 오늘 또 만나도 ‘어제 내가 샀으니 오늘은 네가 사라’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또 5만원을 낸다. 단, 5만원에서 100원이라도 넘어가면 ‘그것은 너희들이 내라’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고 5만원만 계산하고 휙 나가버린다.
이렇게 원칙이 확실하니 5만원이 넘으면 다음은 내가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치 볼 일도 없다. 또 고정 수입이 있는 성인으로부터 얻어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오히려 그를 만날 때는 5만원 한도 내에서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모두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다. 그것이 재미다.
이 원칙은 매일 사람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얻어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한 달에 자신이 낼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 보니 하루 5만원×30일 해서 총 150만원이어서 정한 것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원칙을 실행하고 보니 만남에 있어 식사 값이 중요치 않더라는 것이다. 식대가 1만원이든 100만원이든 모인 사람들끼리 편하게 보내는 것이 그 자리를 결정한다고 한다.
오늘도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기에 앞서 그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안주연(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