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력 한계 보여준 총리 해임건의안 처리
입력 2012-07-22 18:33
민주통합당이 발의한 김황식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강창희 국회의장의 기습적인 직권상정에 이어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내각을 총괄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막강한 자리인 국무총리를 해임해 줄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안이 여야 합의도 없이 덜컥 상정된 뒤 개표도 하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것이다. 지난 20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헌법에는 사유가 명시돼 있지 않지만 국무총리가 직무상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거나, 정책 수립·집행에 중대한 과실이 있을 경우 등에는 국회가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필요하며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무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한다.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당이 절반 가까이 되는 지금의 국회에서는 통과가 어렵다.
물론 건의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총리를 해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국회 존중의 정신에 따라 해임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헌법학계의 통설이다. 이때 총리가 제청한 국무위원인 장관들도 모두 물러나야 하며 전면 개각이 불가피하다. 이 정도로 총리 해임건의는 엄중한 사안이며 정국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올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야와 강 의장은 마치 사소한 안건 하나 처리하듯 속전속결로 끝냈다.
국정을 공깃돌 가지고 장난치듯 하는 이들의 가벼움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총리 유고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을 원내대표 간 한 마디 대화도 없이 표로 결판낸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초반부터 이처럼 대화 없이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니 이번 19대 국회도 기대할 게 없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책임을 따지자면 이번 사태는 민주당이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정부가 어물어물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통과시키려 한 잘못이 있긴 하지만 김 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한 마당에 이번 일이 과연 해임 사유가 될 만한지는 의문이다. 검찰 출두를 요구받은 당 소속 원내대표가 떠안아야 할 체포동의안과 맞바꾸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의심받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국회의 직무유기로 4명의 대법관이 공백이라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위협받고 있는데도 원내대표 살리기에 목숨을 건 듯한 민주당의 태도는 참으로 한심스럽다. 이날 직권상정도 총리 해임건의안이 표결 처리된다는 보장이 없으면 본회의를 보이콧하겠다는 민주당의 과욕이 빚은 해프닝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여야는 당리당략을 떠나 좀 더 진지하게 국정을 다뤘으면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또 다시 국회무용론에 직면할 것임은 정치권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