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은퇴, 베이비부머의 미래] 벼랑에 몰리는 하우스푸어… ‘짐이 된 집’ 시한폭탄 터진다

입력 2012-07-20 18:46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세대별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노후 준비가 미흡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주택을 대량 매도할 경우 공급 초과로 집값 급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무리하게 집을 장만했거나 평수를 늘린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하우스푸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나같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이들 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의 해빙(解氷)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 시한폭탄이 숨겨져 있다. 타이머는 3년 이후로 맞춰져 있지만 지금부터 폭발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현재로선 파괴력을 짐작하기 힘들다. 메가톤급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고,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

그 시한폭탄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이 생계를 위해 부동산 시장에 내놓을 아파트와 단독주택이다.

49∼57세인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베이비부머들이 마땅한 수입원이 없을 경우, 주택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들의 은퇴가 본격 시작될 3년 뒤부터 부동산 시장에 대형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일부 지역은 이미 시작=정상적인 경기라면 베이비붐 세대들이 생계를 위해 내놓은 아파트는 다른 세대가 사야 한다. 그러나 주축세력인 30∼40대도 경제적 여력이 없다. 현재도 공급 초과인 상황에서 713만명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주택을 대량 매도할 경우 집값은 끝없이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 목동에서 현대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김영곤(53)씨는 20일 “대형 평수를 중심으로 베이비붐 세대들이 집을 내놓는 움직임이 벌써 시작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목동 주민들은 대부분 자녀 교육 때문에 거주한다”면서 “대학에 입학했거나 결혼, 취업 등의 이유로 자녀들이 독립한 베이비붐 세대 부부들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파트를 팔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진단도 마찬가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팀장은 “베이비부머들이 내놓는 아파트들은 전형적인 생계형 매물”이라며 “그 수가 아직 많진 않지만 대형 매도가 본격화되기 전에 발 빠르게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량 매도는 부동산 시장 뒤흔들 대형 변수=시기만 문제일 뿐 베이비붐 세대들의 아파트 대량 매도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과거에는 집값이 오른다는 불문율을 믿고 어떻게든 주택을 소유하려고 했으나 시세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집을 꼭 보유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졌다.

김규정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본부장은 “베이비붐 세대들의 아파트 매도 현상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으나 그와 관련한 상담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새로운 수요자가 없는 상황에서 공급 초과는 부동산 시장을 벼랑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부동산연구실장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우선 보유하고 있는 예금을 먼저 깨고 그다음 보험을 해지하고 마지막으로 집을 판다”면서 “베이비부머들이 집을 어렵게 매도해 소형 평수로 가더라도 시세 하락과 세금 부담 등으로 실제 만질 수 있는 돈은 얼마 안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위험은 예견되지만 대책은 마땅치 않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부동산 경기 회복은 한두 가지 처방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억원이 드는 주택의 수요자층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기 활성화는 전제조건이다.

부동산 업계는 베이비부머들의 주택 대량 매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금리인하, 양도세·취득세 등 인하, 집을 담보로 생활 자금을 빌리는 역모기지론의 확대, 한 집을 나눠 세입자를 받을 수 있는 세대분리형 아파트의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