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은퇴, 베이비부머의 미래] 인생 2막 60대에 노후 준비하는 최호열씨 STOP? START!
입력 2012-07-20 19:05
또 20일이다. 은행 대출금 이자 내는 날이다. 달력을 보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날인데 아직도 무섭다. 그나마 아들과 딸이 도와줘 1억2000만원이던 빚을 절반으로 줄였는데도 이자만 갚는 데 매달 60만원이 들어간다. 한 달 동안 뼈 빠지게 일을 해 받는 평균 15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는 이자 대기 빠듯하다. 대기업 공장장, 퇴직, 자영업 실패…. 폭풍처럼 지나온 13년의 세월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불과 1년 전 대출금 이자로 매달 150만원씩 나갈 때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이자를 내는 날이 다가오면 왜 사람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나마 지금은 행복하다. 나이 60이 넘어 든 적금통장만 보면 뿌듯하다. 매달 7만원밖에 붓지 못하지만 1년이 넘은 이 통장이 미래다. 노후 준비를 이제야 한다고 주위에서 타박할지 몰라도 통장만 보면 출근길이 한결 가볍다.
최호열(62)씨. 그도 한때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중학교 졸업장 밖에 없었지만 대기업 계열사에서 공장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많은 것을 빼앗았다. 1999년 5월 아무 준비 없이 떠밀리듯 회사를 그만뒀다. 수입은 0원. 모아둔 재산은 89년 경기도 성남에 사둔 106㎡(32평)짜리 아파트, 직장이 있던 광주시의 79㎡(24평) 빌라, 그리고 자동차 1대가 전부였다.
퇴직을 하고 얼마 안돼 광주시에서 간판 제조업을 준비했다. 퇴직금 1500만원에 성남·광주 집을 팔아 마련한 1억7000만원을 투자했다. 금방이라도 성공한 자영업자로 변신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련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2000년 2월 1일 상가에 불이 났다. 가게는 통째로 불탔고, 최씨의 ‘노후’도 함께 잿더미가 됐다. 그해 2월 말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왔다. 남아있던 6000만원으로 중곡동에 전셋집을 구했다. 어렵사리 구한, 월 60만원을 받는 공공근로로는 생활이 안됐다. 고등학생, 대학생인 두 자녀에게 용돈 한번 주기 힘들었다. 이때 한도가 2000만원인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본격적인 마이너스 인생이 시작됐다. 먹고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경기도 구리에서 시작한 철물점은 제법 장사가 됐지만 7년 만에 돈을 떼이고 문을 닫았다.
그래도 지난해 이맘때 친구 소개로 경기도 남양주 덕소에 있는 방송 소품 제작·배달 업체에 취직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기본급 70만원에 이런 저런 추가 수당을 받으면 많을 땐 300만원까지 된다. 빚도 많이 갚았다. 최씨는 “대기업에 다닐 때 은퇴 준비를 했더라면 지금쯤 허덕이지 않을 텐데”라면서 “지금이라도 은퇴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적금을 붓고 있다”고 했다.
‘잿빛 은퇴’ 시대다. 아무 준비 없이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를 한 사람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노후 보장용으로 생각했던 부동산은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집값 하락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생활비·의료비를 벌기 위해 자영업으로 뛰어들지만 이미 자영업은 포화상태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빚더미로 내몰리기도 한다. 전체 가계대출 가운데 50·60대 비중은 지난해 29.7%, 60대 이상은 16.7%나 된다. 평생 현역이라는 자조 섞인 용어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우울한 은퇴를 피할 길은 끊임없는 ‘노후 준비’라고 말한다.
진삼열 김찬희 강준구 이경원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