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돈줄 막았던 레비가 … 北과 불법거래 HSBC 사장

입력 2012-07-19 19:14

‘북한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스튜어트 레비 전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이 17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했다. 그의 직함은 뜻밖에도 HSBC은행의 ‘글로벌 법률담당 사장(CLO)’이었다.

레비는 2005∼2007년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주도해 김정일 정권에 큰 타격을 준 인물이다. 그가 자신의 정책을 무시하고 북한 관련 계좌를 운영한 HSBC의 최고경영진이 된 것이다. 레비는 청문회에서 논란을 의식한 듯 자신의 취업 경위를 먼저 설명했다.

“나는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정권 아래 7년(2004∼2011년) 동안 테러조직의 금융 정보를 총괄하는 일을 해왔다. HSBC에서 먼저 내게 (불법 금융 거래) 문제의 개혁을 위해 도움을 요청해 왔고, 나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관련 계좌를 정확히 찾아냈던 그는 당시 HSBC의 불법계좌 존재도 알고 있었다.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8월 당시 HSBC의 준법감시인이었던 데이비드 베이글리는 상부에 전달한 내부 이메일에서 “한 콘퍼런스에서 레비를 만났는데, 그가 이란 정부와 관련된 계좌가 있다며 관계를 끊으라고 협박했다”고 밝혔다. 베이글리는 청문회에서 자금세탁 문제에 책임지겠다며 사임했다. 그러나 레비는 자신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때는 이미 불법 자금과 관련된 최악의 사건들이 벌어진 뒤였다며 상원 청문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피해갔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레비는 상원이 HSBC의 불법자금 세탁 혐의 조사에 착수한 직후인 2011년 1월 재무부에서 물러났다. HSBC에 입사한 시점은 올해 초지만 그는 그 이전부터 은행 내 불법자금 문제를 경영진과 논의해 왔다고 밝혔다. 미 상원 소위의 조사와 관련된 정보나 재무부 재직 시 확보한 정보가 그를 통해 HSBC에 전달됐을 가능성도 있다.

레비는 재무부 재직 시절인 2005년 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 2500만 달러(약 300억원)에 이르는 북한 자금을 2년간 꽁꽁 묶었다. BDA 자금 동결 이후 전 세계 금융기관들은 연쇄적으로 북한과의 거래를 끊었고, 한국에서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대북 교류에 악영향을 주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