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시장과 국가는 다시 ‘올바른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말하다’

입력 2012-07-19 20:35


경제민주화를 말하다/노암 촘스키,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위너스북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 핫 키워드는 ‘경제민주화’이다. 이 뿐인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가 두더지 게임 마냥 때리고 때려도 고개를 내미는 지금, 경제민주화는 글로벌 핫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경제민주화인가, 그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당혹해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석학 노암 촘스키, 필리핀 하원의원 월든 벨로,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 데이비드 랜섬 등 전 세계 진보진영 지식인 및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이 속 시원히 답을 내놓은 게 이 책이다. 원제는 ‘사람이 먼저인 경제학(People First Economics)’. 40여년 전통의 영국 진보 성향 국제문제전문지 ‘뉴 인터내셔널리스트’가 기획했다.

# 위기 상시화 초래하는 시장경제… 이래서 경제민주화를

저자들은 위기의 상시화만 초래하는, ‘너무나 무능한’ 시장경제와 결별하고 새로운 경제로 전환해야 할 때라는 데 입장을 같이 한다. 그 방향은 돈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경제 주체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는 인간의 필요와 환경 쪽으로 초점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와 촘스키는 아담 스미스 이래 불문가지 원칙이었던 ‘보이지 않는 손’이 허상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결론과 관련해 스티글리츠는 1929년 대공황을, 촘스키는 197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을 각각 주목하지만 그래도 정부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시장과 국가는 다시 ‘올바른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위기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스티글리츠·51쪽)

촘스키는 특히 국가 주도 경제성장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을 성공사례의 예로 들기도 했다. “한국은 철강산업 육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조언을 보란 듯이 뒤집고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규모 철강산업을 구축했다.”(70쪽)

책은 우리로 하여금 해답을 고민할 시간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자금 흐름을 돕기 위한 은행은 투기장이 되고, 거주 공간인 주택은 재테크 수단이 됐으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일자리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뉴 인터내셔널리스트’ 편집자인 바네사 베어드는 이렇듯 은행, 주택, 일자리, 돈, 시장, 조세, 환경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처한 경제적 조건이 어떻게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고민을 유도한다.

# ‘그린 뉴딜’에서 ‘공공재 통한 반(半)자본주의’까지… 이렇게 경제민주화를

이런 질문 끝에 나온 대안을 보자. 런던의 싱크탱크 신경제재단의 회원 앤 페티포는 금융위기, 석유고갈, 기후변화를 인류가 직면한 3대 중대 사태로 규정하면서 ‘그린 뉴딜’을 역설한다.

어떤 이는 금융기득권에 대항하라고, 또 다른 이는 세금탈루처인 조세피난처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고 외친다. 겉으론 온난화 방지를 주장하지만 탄소배출권 거래제 뒤에 숨어 이익을 챙기는 거대자본의 행태를 고발하기도 한다.

가장 신선한 건 영국 녹색당 전 대변인 데렉 월의 개방형 반자본주의를 통한 자원의 사회적 공유 아이디어이다. “자본주의는 성장을 해야 하지만 생태적으로 이를 이루기가 어렵다. 2008년 경제위기가 보여주듯이 자본주의는 우리가 점점 더 많이 소비하는 경우에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형태의 재산권 체제가 있다면 지금과 다르게 지속가능한 경제가 가능할 것이다.”(235쪽)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가 내놓은 것이 공공재 개념을 통한 사회적 공유다. 도서관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월은 나아가 이 개념에 기초한 10가지 정책을 제시한다. 노동자들이 파산한 기업들의 경영권을 확보하도록 허용하자, 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정부 자금을 활용하자 등등.

“자본주의의 대안을 꿈꾸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며 실현가능한 일이기도 하다.”(242쪽)

신자유주의의 패배를 선언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외칠 때 이들의 언어는 때로 거칠지만 이처럼 진지하게 대안을 고민하고, 그 미래에 희망적이라는 점에서 그 외침은 공허하지 않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김두관 등 여야를 막론한 잠재적 대선 후보들이 최대 공약으로 경제민주화 실현을 내걸었다. 어느 게 알곡이고 어느 게 쭉정이인지, 이 책은 어느 정도 판단의 잣대를 제공해줄 것이다.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