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나는 담배광고, 기는 규제
입력 2012-07-19 18:36
며칠 전 ‘불법 판치는 편의점 담배 광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취재·보도했다. 국민건강증진법 9조4항 ‘담배 광고 금지 및 제한’ 규정에 따르면 편의점 안 담배 광고는 외부에서 광고 내용이 보이지 않게 전시 또는 부착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상당수 편의점 안 담배 광고는 환한 LED 광고판 등 형태로 돼 있어 바깥에서도 훤히 보이게 설치돼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8일 서울시 주최로 열린 실내금연규제 정책 토론회에서 대한금연학회 소속 한 의과대학 교수를 만났다. 그가 이 기사를 언급하며 “편의점 안 담배 광고 문제의 심각성은 1년 전부터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에 수차례 문제 제기를 했었다. 그런데 ‘교수님, 제발 가만있어라’는 면박만 들었다”고 전했다. 서울시 담당 공무원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였다. 관계당국의 안이한 사태 인식과 뒷북 단속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그 교수의 지적대로 요즘 청소년 등 젊은층이 많이 찾는 편의점에 가면 계산대 주변에서 신제품 담배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커피 어때요?’ ‘쿠바 말레콤 해변의 상쾌함’ ‘부드럽게 즐기거나 시원하게 바꾸거나’ 등이 대표적 예다. 얼핏 커피나 음료수 광고로 착각할 정도다. 젊은층이 선호하는 색상과 디자인을 강조하는 게 공통점이다.
‘커피 어때요?’란 광고 문구를 내세운 국내 담배회사의 신제품 ‘OO카페’ 광고를 보자.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있고 커피콩이 수북이 쌓여 있다. 옆의 담뱃갑도 커피색이다. 아래쪽 작은 글씨의 담배 경고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담배회사들은 최근 이 같은 ‘가향(加香)담배’들을 출시하고 있다. 가향담배는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필터 속에 과일향이나 커피향, 멘솔향 등을 첨가한 제품이다. 담배 판촉 상술도 교묘해지고 있다. 담뱃갑과 광고에 등장하는 ‘오도(誤導)문구’는 특히 문제다. 저타르 담배(순한 담배)임을 강조하는 ‘순(純)’ ‘마일드’ ‘라이트’ 등의 문구는 이미 일반화돼 있다. 요즘엔 담배의 해악을 무마시키려는 문구와 디자인으로 장식된 ‘이미지 광고’들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다. 실제 한 지인의 초등생 아이가 편의점에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담배 광고를 보고 ‘너무 이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기겁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저타르 담배는 피울 때 더 깊이 들이마시고, 자주 빨게 돼 건강에 미치는 폐해가 결코 덜하지 않다. 이는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진 지 오래다. 가향담배 역시 첨가된 향으로 인해 담배를 끊기 어렵게 돼 젊은층의 흡연을 유도한다는 연구들이 최근 나오고 있다.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가향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협약 당사국들에 협약 비준 후 5년 안에 담배 광고·판촉·후원은 물론 담배 제품 진열도 금지 또는 제한토록 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3년 제정한 보건 분야 최초 국제 협약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FCTC를 비준해 5년 기간이 지났다. 하지만 후속 정책의 진전은 아직 이뤄내지 못한 상태다. 금연구역 확대나 경고그림 도입 같은 정책 추진에 밀려나 있다.
정책에 우선순위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청소년의 담배 접근성을 높이는 담배 광고에 대한 규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전체 금연 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으면 담배회사들의 상술은 날고, 규제(단속)는 늘 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태원 사회2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