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상보육 언제까지 땜질 처방할 건가
입력 2012-07-19 18:36
‘공유지의 비극’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0∼2세 영유아 무상보육 중단 위기와 관련해 국비 2800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제도 시행 넉 달 만에 지방자치단체들의 보육예산이 바닥나 무상보육이 중단될 상황에 놓이자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무상보육은 애초부터 정확한 수요와 예산을 고려하지 않고 총선을 겨냥해 급조된 기형 정책이었다. 보육비를 소득 하위 70%에만 지원하기로 했던 것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모든 계층에 지원하기로 확대했다. 보육비가 공짜라고 하니 집에서 돌보던 영유아까지 어린이집에 맡겨져 보육수요가 3배 이상 폭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육예산이 떨어졌다며 가장 먼저 백기를 든 곳이 부자동네인 서초구다. 나랏돈이 쓰일 곳에 못 쓰이고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는 방증이다.
기획재정부는 차제에 선별 지원으로 방향을 틀려 했으나 민주통합당은 물론 새누리당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당장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포퓰리즘에 맞설 배짱을 가진 정직한 한국인’이라고 외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부모에게 보육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올해 보육서비스는 중앙정부, 지자체,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서 해법을 마련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무상보육이 갑자기 중단되는데 따른 대혼란을 올해는 어떻게든 막고 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꿰는 게 맞다.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국고에서 퍼주면서 땜질 처방으로 가선 곤란하다. 정부는 우선 지자체가 지방채 발행 등을 통해 올해 부족분을 메우면 내년에 보전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내년 예산을 이런 식으로 미리 끌어다 쓰게 되면 차기 정부는 재정 운용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갈수록 복지수요는 늘고 가뜩이나 경기가 내리막을 걷고 있어 재정을 쓸 곳은 널려 있는데 필요하지도 않은 곳에 써 버리면 실탄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또 지금도 재정난이 심각한 지자체가 무상보육을 위해 빚을 졌다가 파산이라도 하게 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올해만 임시방편으로 넘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선별 지원으로 갈 것인지, 보편적 무상보육으로 갈 것인지 결정하는 게 낫다. 한국갤럽이 최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85명을 대상으로 영유아 무상보육 지원 대상을 조사한 결과 72.8%가 저소득층 대상으로 선별 실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 대다수도 재벌 손자까지 나랏돈을 대줘 키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무상보육은 반값 등록금, 기초노령연금 등 향후 쏟아질 복지정책의 시금석이란 점에서도 중요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대선 주자들은 ‘고교 무상·의무교육’ 공약까지 들고 나왔다. 대선 주자들도 나라 곳간을 생각하지 않고 표만 챙기다가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