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의 풍경] 미당의 첫 시집 花蛇集
입력 2012-07-19 11:30
선악과와 뱀 이야기… ‘화사집’은 구약성경에 뿌리
‘화사집(花蛇集)’은 1941년 남만서고(南蠻書庫)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간행된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첫 시집이다. 미당의 첫 시집이라는 이름값만으로도, 100부 한정판이었다는 희소성만으로도 이 시집은 충분히 귀할 뿐만 아니라 미당 문학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각별하다. 우리가 흔히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 ‘화사집’의 구성과 편제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이는 다름 아닌 미당 자신이었다. 미당은 1980년 ‘화사집’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이런 신화(神話) 헬레니즘을 나는 기독교의 구약성서의 솔로몬 왕의 ‘아가(雅歌)’ 등에 보이는 고대 이스라엘적 양명성(陽明性)과 이때는 거의 혼동하고 있었던 일이다. 내 ‘화사집’을 주의해서 보아준 이라면 이 혼동을 여러 곳에서 쉬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공부와 성찰은 (중략) 자세히 음미해야 할 동양 정신의 일환임을 주의할 만한 데 이르지 못했고, 다만 그 생태에 있어서 솔로몬의 ‘아가’적인 것과 그리스 신화적인 것의 근사치에만 착안하여 양자의 그 숭고하고 양(陽)한 육체성에만 매혹되어 있었던 것이다.”(서정주 ‘내 시에 대한 나의 해설’,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구약성경의 아가(雅歌), 잠언(箴言), 전도(傳道)서는 솔로몬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미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아가’이다. 히브리어로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의 ‘아가’는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가며 말하는 연애시 모음으로 유명하다. 미당의 말대로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 줄 경우 발견하게 되는 ‘화사집’의 구성 원리란 무엇일까. 먼저 시집 표지를 열면 사과를 물고 있는 뱀 그림이 나타난다. 이 삽화가 권두를 장식한 까닭은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와 뱀 신화를 반영한 결과인 동시에 구약 신화가 이 시집의 가장 강력한 수원(水源)임을 시사한다.
창세기 신화는 인류 조상 이브가 뱀의 유혹에 못 이겨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산 이야기인데, 그 후 인간의 역사에는 저주와 유랑과 원죄가 들어온다. 이러한 성서적 서사(드라마)가 ‘화사집’의 골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시집엔 ‘자화상(自畵像)’ ‘화사(花蛇)’ ‘노래’ ‘지귀도시(地歸島詩)’ ‘문(門)’ 등 다섯 개의 중간 제목으로 나뉘어 모두 24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미당의 초기시가 그리스적 육체성과 보들레르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못지않게 그의 의식 체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성서로 대표되는 기독교적 사유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미당에게 그것은 외적 표지(標識)가 아니라 무의식적 원형으로 내면화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무의식적 경도를 그는 ‘혼동’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표현에 유의할 때 ‘화사집’의 구성은 희랍적 헬레니즘이나 동양 정신과는 전혀 다른(‘혼동’된) 성서의 원리를 닮았다는 데 착안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선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 시 ‘자화상’은 그러한 구성의 첫 열쇠가 된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언친 시(詩)의 이슬에는/ 메+ㅊ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껴 있어/ 벼+ㅊ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자화상’ 부분)
시의 화자는 타인이 자신을 죄인이나 천지로 보는 냉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지만 그 스스로의 원죄의식만은 충실하게 받아들인다. 그 뉘우침의 동력은 철저하게 자기 내부에서 오는데, 이처럼 타자와의 소통 단절 혹은 자기 안으로의 응결은 청년 미당의 정신편력을 이해하는 데 소중한 단서가 된다. 그는 ‘죄인’이나 ‘천치’로 대변되는 불구의 형상을 노래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오히려 ‘찰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을 맞아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갈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카오스적 역사와 편력을 통해 주체를 정립해가는 ‘창조’의 원리가 상징적으로 암시돼 있는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제목 ‘지귀도시’의 시편들은 미당이 제주 남단 지귀도라는 섬에 유박하면서 쓴 ‘정오(正午)의 언덕에서’ ‘고을나(高乙那)의 밤’ ‘웅계(雄鷄<上>)’ ‘웅계(雄鷄<下>)’ 등 네 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는데, 상당 부분 그리스도의 이미지와 겹쳐 읽을 수 있다. “시악시야 나는 아름답구나/ 내 살결은 수피(樹皮)의 검은 빛,/ 황금 태양을 머리에 달고,/ 몰약(沒藥) 사향(麝香)의 훈훈한 이 꽃자리// 내 숫사슴의 춤추며 뛰어가자./ 웃음 웃는 짐승, 짐승 속으로.”(‘정오의 언덕에서’ 부분)
이 작품의 시간 배경은 한낮(正午)이고, 공간 배경은 섬에서 쓴 작품답지 않게 ‘바다’가 아니고 ‘언덕’이다. 이 시공간적 메타포는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의 시공간과 고스란히 겹친다. 또 ‘지귀도’에는 신인(神人) 고을나의 자손이 산다는 데 그 ‘신인(神人)’ 역시 그리스도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 미당은 ‘정오의 언덕에서’에서 구약 ‘아가’에 나오는 “향기로운 산우에 노루와 적은 사슴같이 있을지어다”는 구절을 부제로 삼고 있다. 나머지 세 편에서도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원형적 이미지로 보이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닭의 벼슬은 심장(心臟)우에 피인 꽃이라/ 구름이 왼통 젖어 흐르나/ 막다아레에나의 장미(薔薇) 꽃다발.”(‘웅계<下>’)
‘웅계(下)’는 그리스도 수난의 대표적 표상인 ‘어린 양’ 이미지의 변용이다. 곧 그리스도의 속죄양 의식이 녹아 있는 것이다. 또 막달라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목격한 성서적 인물이기도 하다.
소제목 ‘문(門)’ 아래 실린 ‘바다’ ‘문’ ‘서풍부’ ‘부활’ 등 4편의 시는 새로운 세계로의 열림이 이루어지는 이 시집의 대미라고 할 수 있다.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兄弟)와 친척(親戚)과 동모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게집을 잊어버려.”(‘바다’ 부분)는 그리스도가 부정하려 했던 세속적 관계와 이미지가 겹친다. 이어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뜨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國土)가 있다”라는 연이 이어지면서 “가라”는 명령어법이 겹쳐진다. 이 명령은 화자의 자기 다짐으로, 그것을 통해 화자는 비로소 새로운 세계로 열리는 ‘문(門)’에 다다른다.
그 ‘문(門)’을 여는 상상력은 시집의 마지막 시편인 ‘부활(復活)’에서 절정을 이룬다. “내 너를 찾어왔다 유나(臾娜). 너참 내앞에 많이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鍾路를 거러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오는구나. 새벽닭이 울때마닥 보고싶었다… (중략) 한번가선 소식없든 그어려운 주소에서 너무슨 무지개로 네려왔느냐”(‘부활’ 부분)
시적 화자의 눈앞에 어린거리는 죽은 애인 ‘유나’의 현재적 재생이야말로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랴. 유나는 “그어려운住所에서 너무슨 무지개로 네려”와 “모두다 내앞에 오는” 존재로 변주된다. ‘화사집’의 마지막 작품 ‘부활’은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님아”라고 노래 부르는 두 번째 시집 ‘귀촉도’의 첫 작품 ‘밀어(密語)’와 의미심장하게 연결된다. 이처럼 ‘화사집’은 일관되게 성서에 바탕을 둔 서사(드라마) 구조로 짜여 있는 것이다.
◎ 미당은 누구인가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 당선. 같은 해 김광균 김동리 오장환 등과 잡지 ‘시인부락’ 창간. 시집 ‘화사집’(1941), ‘귀촉도’(1946),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 서라벌예대 교수·동국대 교수·문인협회장·예술원 회원 역임. 2000년 별세.
◇자문교수(가나다순)=유성호(한양대) 이상숙(가천대) 최동호(고려대·한국비평문학회장)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