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광속 사랑법’… 심윤경 장편소설 ‘사랑이 달리다’
입력 2012-07-19 18:11
소설가 심윤경(40·사진)이 달린다. 장편 ‘사랑이 달리다’(문학동네)의 주인공인 서른아홉 살 김혜나가 사랑을 향해 질주할 때 심윤경은 문장으로 질주한다. “그녀는 마하 39로 달리는 여자다. 그녀와 함께 일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뿐이다. 달리기 실력. 혜나가 다시 달린다. 살짝 미친 저 여자는 점점 빨라진다. 나도 지체 없이 달려야 한다. 그녀와 함께 일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달리기 실력뿐이다. 우리는 이제 마하 40으로 달리고 있다.”(‘작가의 말’에서)
먼저 혜나의 난장판 가족 이야기부터 따라가 보자. 이화여대를 졸업한 인텔리이면서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트럭운전사와 결혼한 낭만주의자 엄마가 있다. 엄마는 그 몽상가적 기질로 인해 바람나 이혼하자는 아빠를 상대로 재산분할 청구소송도 못한 채 빈 손으로 이혼 당한다. 게다가 제 정신 못 차리고 대형사고만 치는 작은 오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큰 오빠, 회사에서 지방으로 좌천당한 남편 성민에 이르기까지 혜나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그러므로 돈을 벌어야 한다. 더러워도, 아빠처럼. 이것이 나의 결론이었다.”(70쪽)
그러던 중 작은 오빠의 연줄로 알게 된 유명 산부인과 부설 산후조리원에 취직하러 갔다가 매력적인 원장 정욱연에게 끌린다. 혜나와 오빠가 주고받는 전화 통화 내용이 걸작이다. “귀여운 데. 취직을 하느니 그냥 첩이 되어버릴까?” “첩 아니라 정부인도 가능해. 오래전부터 기러기가 되었다고 들었거든. 형수가 엄청 부잣집 딸인데 철이 없었어. 아마 사이가 드럽게 나빴을 거야. 지금쯤 이혼했을 걸.”(78쪽)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던 정욱연도 엉뚱하고 솔직한 혜나에게 마음을 열면서 둘은 급속도로 친밀해진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서 울고 싶었다. 세상이 떠내려가도록, 엄마와 아빠와 오빠와 성민이 다 떠내려가도록 대성통곡하고 싶었다. 오래 전에 죽은 신들까지 깨워 일으킬 만큼 발버둥치고 싶었다.”(203쪽)
이 정도면 혜나가 어떤 여자인지 감이 잡히고도 남는다. 뽕끼 있는 여자.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게 무언지를 아는 여자라는 점이다. 정욱연과 두어 번 키스도 하고 두어 번 잠도 잤지만 이혼은 하지 않는 여자. 그게 고난도 광속 질주를 감행하는 혜나의 사랑법이다. 그 사랑은 너무도 빨라 주위 사람들의 비난이나 눈총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다. 운명보다 더 빨리 달려야 했던 혜나의 우당탕탕 사랑 고백기는 한마디로 우리 시대, 사랑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혜나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런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몸에 지닐 수가 없었다.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대단치도 않았다. 예를 들자면, 나 자신, 혜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가족과 일상을 발라낸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작가의 말’에서)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