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사람들… 정찬주 장편소설 ‘다산의 사랑’

입력 2012-07-19 18:11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에게 여인이 있었다. 제자 이청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그를 위로하기 위해 며칠 머물던 학림마을의 ‘남당네’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으나 남편이 일찍 죽는 바람에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하던 주막집 일을 거들던 여인이었다. 오랜 유배생활로 심신이 지쳐 있던 스승의 외로움을 눈치 채고 이청은 남당네에게 다산의 수발을 들게 했으니 급기야 다산은 남당네를 소실로 들였고 딸 홍임이 태어난다.

소설가 정찬주(61·사진)의 장편 ‘다산의 사랑’(봄아필)은 다산에게 헌신했던 여인 남당네와 정실인 홍씨 부인과의 갈등, 그리고 강진의 여러 제자들의 욕망과 좌절을 통해 정약용의 인간적인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홍임 모가 마재에 오고 난 뒤부터 정약용은 아내의 눈치까지 봤다. 그러니 집 안에 틀어박혀 책장을 넘기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하여 집중을 못했다. 언제 아내가 홍임 모를 불러놓고 남편 들으라는 듯이 닦달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오두막으로 쫓겨 나간 것이 다행일지 모르기 때문이다.”(87쪽)

마재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다산의 고향이다. 귀양에서 풀려난 다산이 먼저 마재로 돌아온 뒤 강진에 남겨놓은 남당네와 딸 홍임을 불러들일 때 길 안내를 맡은 이가 강진의 주막집 봉놋방에서 다산으로부터 강학을 배운 이청이다. 이청은 다산이 가르친 여섯 명의 읍중제자 가운데 가장 야망이 들끓는 제자이지만 정작 다산이 마음속으로 점찍어 둔 제자는 황상이다.

“선상님, 지는 과거공부를 허고 싶어라우. 아부지도 선상님만 잘 만나불문 잘헐 거라고 했어라우.”(이청)

“선상님, 지는 흙을 묻히고 사는 농사꾼이제 붓을 만지고 사는 선비 될 그릇은 아니란께요.”(황상)

두뇌 회전이 빠른 이청보다는 비록 둔하지만 정성을 다할 줄 아는 황상은 훗날 다산과 시 문답을 주고받을 정도로 인문학적 토대가 단단한 인물로 그려진다. 다산의 주변엔 늘 사람이 꼬였지만 어떤 이는 필연적으로 다산을 찾아왔으며 어떤 이는 다산 곁에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인물들의 사연이 실타래처럼 얽혔다가 다시 풀어지는 장면은 이 소설의 강점 중 하나이다. 나아가 강진 사람들은 전라도 방언을, 마재 사람들은 경기도 방언을 구사하고 있는 점에서도 작가의 사려 깊은 분별력이 묻어난다.

정약용은 자신에게 머물렀다가 떠나간 사람들에게 미련을 갖지 않았다. 다산을 지나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길을 택했다. 예외가 있다면 오직 한 사람. 임종 직전에 자신을 찾아온 제자 황상이었다. 정약용은 그런 황상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겨주고 숨을 거둔다. “‘규장전운(奎章全韻)’ 한 건, 중국 붓 한 자루, 중국 먹 한 개, 부채 한 자루, 여비 엽전 두 꿰미.”(280쪽)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