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4) 유전되는 아버지, 누전되는 누이… 시인 신동옥

입력 2012-07-19 18:11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7년 동안 자취를 하고 있는 신동옥(35) 시인은 서울 서북지역을 지칭하는 ‘서북청년단’의 일원이다. 이름을 지어준 것은 소설가 이순원이지만 미군정 당시 조직된 반공주의 청년단체 ‘서북청년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소설가 김도언 김숨 김태용, 시인 박장호 등 이 지역 거주 문인들의 친목 모임인 ‘서북청년단’은 주로 지하철 6호선 새절역 부근의 호프집이나 신동옥의 자취방에 자주 모인다. 시 동인 ‘인스턴트’에 참여하고 있는 신동옥의 내방객도 많지만 위층에 사는 소설가 김도언 김숨 부부까지 합세하면 밤샘을 하기 일쑤이다. 그런 신동옥이 2주 전, 집을 옮겼다.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 전세방도 알아봤지만 다시 신사동에 주저앉았다.

전남 고흥 출신으로 순천고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자취를 해왔다는 그는 한양대 국문과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20년 세월의 자취남이다. 고교 때 동생들이 고흥에서 순천으로 ‘유학’ 온 직후부터 그는 자취를 해온 셈이지만 그의 뿌리는 증조부, 조부, 부모가 한 지붕 밑에 살았던 고흥의 4대에서 비롯된다. 아흔을 훌쩍 넘겨 장수했던 증조부는 아들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한 방을 썼던 그는 성장하면서 가족사의 불우에 대해 알게 된다. 장남인 할아버지 밑으로 남동생들은 6·25전쟁 때 사망하거나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이 돼 사망했다. 그래서 그의 시엔 역사와 탈역사의 왕복운행이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유전의 순환고리에서

새롭게 발견한 시적 유전자는 ‘누이’

“1977년,/ ‘유전은 밥상머리의 난투극’이라고 썼다./ 오이디푸스는 제 아비 처용을 때려죽이고/ 실종됐다는 풍문이다.// 내 증조할아버지는 아흔둘에 노환으로 죽었다 평화롭게./ 내 할아버지는 여든여덟에 노환으로 죽었다 평화롭게./ 내 아버지는 예순을 맞았다 평화롭게.//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 무뚝뚝한 항렬(行列)의 연쇄./ 갑작스레 서로를 닮아버린 모반의 개인사.”(‘성묘’ 부분)


이 시의 다음 연은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의 이미지와 함께 ‘성묘 길의 신동옥씨와 그 아비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칼레의 시민들’처럼 시의 화자는 아버지와 조부와 증조부로 거슬러 올라가는 무뚝뚝한 유전자적 항렬의 일원으로 성묘를 가고 있다. “모든 아비들은 열쇠를 들고 앞장 선다/ 지나온 길을 이 유서 깊은 삶 바깥으로 꺼낼 준비를 하며 계속된다”로 종결되는 이 시의 궁극은 삶 바깥에 존재하는 죽음만이 그 항렬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열쇠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집을 떠나 떠돌아봤자 결국은 선산으로 돌아와 묻히기 마련이며 후손들은 유전자의 쇠사슬에 묶인 채 성묘를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쇠사슬이야말로 죽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버지와 그 아버지로 연결되는 거대한 유전의 세계는 하나의 시스템이자 벗어날 수 없는 생의 순환고리다. 역사에서 벗어나고픈 욕망마저도 역사가 되어버리는 성묘의 행렬은 곧 출간될 그의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될 예정인 ‘누이 연작시’로 이어진다.

“이제는 지붕도 처마도 장독도 감나무도 기억에 없다/ 마당을 나서며 한 걸음에 하나씩 잊은 거다/ 마침내는 한없이 낮고 푸르렀을 대문만/ 마치 누이 표정처럼 또렷하다// (중략)// 누이가 우리 집이라 말했던 그곳을 떠나고 나는 쉬이 다른 사랑에 빠졌다/ 떠날 때마다 표정을 바꾸고 뒤태를 바꾸는 파렴치한으로/ 더는 이 세상에 고향을 두지 않는 족속이 되어버렸다”(‘이사철’ 부분)

‘누이’가 등장하는 연작시에서 누이는 시인의 두 여동생일 수도 있고 유전자적 쇠사슬로 묶인 아비들의 세계에서 벗어나고픈 영혼의 게토일 수도 있다. 성장할 때는 한 지붕 밑 근친의 관계였으나 나중엔 타성의 남자와 결혼해 새로운 유전자를 퍼뜨리게 될 누이에 대한 천착은 직계에서 방계로 누전되는 새로운 시적 유전자가 아닐 수 없다. 누이는 신동옥이 발견한 새로운 대륙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