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學士 교수
입력 2012-07-19 18:39
1965년, 혜곡 최순우는 49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국립중앙박물관의 미술과장이었다. 홍익대 교수 이경성이 말했다. “혜곡 형, 홍대로 오시면 어떻겠어요? 정식 교수로 오셔서 우리 박물관도 도와주고 학생들도 가르치면 좋을 텐데….” 당시 최순우의 부인은 생활고로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최순우는 고민 끝에 김재원 관장에게 사표를 냈다.
홍익대 교수회의는 만장일치로 최순우를 맞는 데 앞장섰고 이사회 결정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러나 김재원 관장은 직원을 홍대에 직접 보내 최순우의 교수행을 저지했다. 박물관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였다. 혜곡도 수긍했다. 이후 최순우는 박물관의 꽃인 학예실장을 거쳐 영예로운 관장 자리에 오른다. 교수가 되지 못한 데 대한 보상일까? ‘한국미의 순례자’(이충렬 지음)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미술을 바라보는 탁월한 안목은 누구도 따르지 못했기에 그를 교수로 모시는 데 고졸(송도고보)이라는 학력이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이후 황순원이나 조병화, 서정주 같은 문인들, 운보 김기창과 같은 화가들이나 음악가들이 학위와 무관하게 대학에 자리를 잡기도 했으나 학력 인플레가 극심해진 요즘에는 이마저도 보기 어렵다.
여기에는 대학들의 조바심이 한몫한다. 예체능계열의 경우 이론을 제외한 실기분야는 석사로 충분한데도 은근히 박사학위를 요구한다. 논문표절로 문제가 된 문대성만 해도 그렇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석사과정 정도만 공부하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무리하게 박사까지 욕심내다 무리수를 두었다.
한양대가 학사 출신 서평전문가 2명을 최근 기초융합교육원 교수로 채용해 화제다. 2010년 연세대가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교수로 임용한 적이 있으나 명망가라는 점에서 다르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표정훈 교수는 ‘탐서주의자의 책’ 등 인문학 서적을 많이 썼고, 경희대 국문과 출신의 이권우 교수는 ‘호모부커스’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책의 저술로 유명하다.
대학 측은 몇 개월간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를 찾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한다. 박사학위 소지자에 한정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인문학 지식을 전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물을 찾다보니 이들의 능력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도 혜곡과 같은 사람이 많은데 사람들의 눈이 어두우니 찾지 못할 따름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