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시중 진술 구애말고 대선자금 파헤쳐야

입력 2012-07-18 21:51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과 함께 시행사 대표 등에게서 8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법정에서 돈의 사용처에 관한 진술을 바꾸는 등 횡설수설하고 있다. 그는 검찰 조사 전에는 ‘대선 여론조사 자금’이라고 했다가 검찰에서는 ‘개인용도’로 말을 바꾼 다음 그제 법정에서는 다시 ‘대선 경선용 필요자금’으로 말을 두 번씩이나 바꾸는 추태를 보였다.

말을 바꾸는 이유는 짐작이 간다. 검찰이 기소한 대로 특가법상 알선수재가 인정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받은 돈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여론조사 등 대선에 사용했다면 정치자금법이 적용된다. 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잘만 하면 무죄도 가능하다.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가 5년이라 2006년 7월부터 다음해 6월 사이의 범죄 가운데 상당 부분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대목은 판사 앞에서는 대선자금 운운하다가 검찰이 강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변호사를 내세워 황급히 말을 바꾼 점이다. 대선자금이 아니라 대가성 없는 돈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에 불과했다는 것. 다시 말해 대가성이 없으니 알선수재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세상에 수억원의 돈을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준다면 돈을 준 사람들이 천사라도 된단 말인가. 최 전 위원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가.

이번 사건이 복잡한 듯하지만 해결 방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검찰이 나서서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의 최종 귀착지를 찾으면 된다. 이미 기소한 피고인을 상대로 다시 수사하는 것이 용이하지는 않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묘안이 없는 듯하다. 수사를 통해 그 돈의 용처를 밝혀 합당한 죄목을 적용하면 그만이다.

대선자금 수사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돈 문제로 수사받는 우리나라 여권 인사들은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대선자금 운운하는 못된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연관되기 때문에 검찰이 본격적으로 칼을 대지 못할 것으로 지레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폐습을 끊기 위해서라도 돈의 용처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옳다. 그래야 경선을 앞둔 지금의 정치권에도 강한 경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 전 위원장은 국민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양아들로 알려진 정용욱씨가 온갖 비리에 연루돼 국내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정권 창출의 공신임을 자부한다면 좀 더 당당하고 자신 있는 태도로 재판을 받기 바란다. 영어(囹圄)의 생활을 각오하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검은돈에 손을 대지 말았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