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美 ‘재정절벽’… 경제위기 축 이동

입력 2012-07-18 22:28

세계경제 위협의 핵심 축이 유럽 재정 위기에서 미국 ‘재정 절벽(fiscal cliff)’으로 이동 중이다.

빠르게 접근하는 태풍의 눈 앞에서 세계경제는 출구를 확보하지 못한 채 불안에 떨고 있다. 재정 절벽은 미 의회가 합의안을 내놓지 않으면 감세 혜택이 종료되고 내년부터 10년간 약 1조2000억 달러 재정 지출이 자동 삭감돼 실물경제가 벼랑으로 추락한다는 뜻이다. 정부지출 삭감→가계소비 위축→기업투자 축소가 발생하면서 불황은 세계로 전염될 수 있다.

미국 자본 시장에 대한 신뢰는 이달 들어 급격히 하락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가 펀드매니저 2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5명 중 1명(19%)꼴로 유럽 위기보다 재정 절벽이 세계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응답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개리 베이커 유럽 투자전략책임자는 “유럽 주식이 인기가 없는 가운데서도 투자자들이 미국에 대한 불안으로 유럽 투자 비중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학자들의 우려 어린 시선도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아가고 있다. 수년간 유럽 위기가 미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했지만 이들은 지금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재정 절벽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모건스탠리는 재정 절벽 불안이 이미 산업 전반을 얼어붙게 했다는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조지메이슨대 스티븐 풀러 교수는 정부 재정 감축을 ‘단두대’로 표현했다. 그는 “160여일이 지나면 단두대가 떨어진다”며 “(재정 삭감으로) 일자리 200만개가 사라지고 실업률이 1.5% 포인트 상승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 절벽으로 인해 내년 미국 경제의 후퇴를 경고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6일 CNBC 인터뷰에서 “(재정 절벽이 일어나면) 아마도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그러나 17일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재정 절벽을 염려하면서도 구체적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다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의회가 재정 절벽을 다루는 것”이라며 의회로 책임을 넘겼다.

정치권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올 가을 대선 표심을 의식, 합의를 미루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어스킨 보울스 전 재정적자위원회 공동위원장 주도 하에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규모 흥정’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은 부유층 세금 인상안을 놓고 자존심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어 현재로선 합의가 요원해 보인다.

Key Word : 재정 절벽

평소 지출해 오던 정부 재정을 갑자기 줄이거나 중단할 때 나타나는 경제에 대한 충격 등 부작용을 뜻한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의결된 예산관리법에 따라 올해 말까지 의회의 새 합의를 도출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2022년까지 국방비와 비국방비 분야에서 1조2000억 달러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