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수혈을 줄입시다
입력 2012-07-18 20:27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을 공급한 대한적십자사는 치료비 1200만원, 수혈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정신적 고통을 겪게 한 동국대는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
서울중앙지법 민사39단독(판사 허명산)이 지난달 21일 내린 판결이다. 동국대 부속 일산병원에서 교통사고로 부러진 다리를 접합하는 수술과 더불어 수혈을 받은 후 C형 간염에 걸린 장모씨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혈액 관리를 부적절하게 한 두 기관의 과실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장씨는 2009년 1월 교통사고로 골절 부상을 입어 이 병원에서 접합수술과 함께 수혈을 받았는데, 4개월 후 심한 황달 증상을 겪었다. 장씨는 검사 결과 그것이 급성 C형 간염 때문인 것으로 밝혀지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의 주된 매개체가 혈액(수혈)이란 점에 비춰볼 때 수혈과 감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혈액관리법에 따라 혈액제제의 안전성과 품질관리를 엄격하게 하는데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법원의 판단은 부적합한 피를 거르지 못한 공급자 측의 혈액 관리 부실과 병원 측의 수혈 전 설명 부족이 만들어낸 인재(人災) 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잘못된 수혈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환자 안전사고 문제의 한 예일 뿐이다. S대학병원 H교수는 사건화돼 외부에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이런 수혈 관련 사고가 해마다 적잖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좋은 뜻으로 헌혈한 피에 문제가 있다거나 특정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혈을 했는데 다른 질병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피를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의학의 발전은 과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됐지만, 수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바이러스 감염과 변질 등의 이유로 헌혈과 수혈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는 피가 많아지는 이유다.
문제는 이번 사건과 같이 사전에 차단되지 않고 사후에 알게 되는 경우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피가 모자라 해마다 약 500억원어치의 혈액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여름방학 및 휴가철이 다가오며 혈액 부족에 대한 의료 관계자들의 근심이 커지는 시기다. 헌혈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군인과 학생들이 휴가를 떠나거나 방학을 맞아 헌혈 양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헌혈자는 늘지 않는 가운데 헌혈과 수혈에 부적합한 피가 많아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인공 혈액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련만, 현대의학은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은 단 하나, 귀중한 피를 한 방울이라도 낭비하는 일 없게 잘 관리하고 의료 현장의 수혈 요구를 최대한 줄이는 것뿐이다. 효율적 혈액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혈액 관리에서 가장 먼저 타파할 것은 각종 수술에서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수혈이다.” 국립암센터 위암센터 김영우 박사의 지적이다. 김 박사는 “꼭 필요치 않은 혈액이 수술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만 개선해도 현재 우리가 쓰는 혈액의 3분의 2를 아낄 수 있다. 그만큼 수혈에 따른 각종 부작용 위험도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수혈대체요법 시술을 적극 권장하고, 해당 병원과 의사를 격려하는 일도 필요하다. 수술 시 가급적 출혈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사용, 수혈의 필요성을 없애고(무혈수술) 부득이 수혈을 하더라도 수술 전 자기 피를 미리 뽑아뒀다가 쓰는 방법(자가수혈), 고농도 철분주사제 등을 써서 수술 후 빈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혈액 부족과 수혈 사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