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독립성 확보와 통신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설립목적 실현하지 못해”
방송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민주사회를 위한 올바른 여론형성이 가능하다. 이런 독립성 실현을 향한 오랜 염원으로 2000년 합의제 행정기구 ‘방송위원회’가 출범했다가 이번 정부 들어서는 정보통신부의 일부 기능을 추가해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됐다. 방송과 통신의 공익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최시중 위원장 구속과 방송사 파업을 계기로 제도와 운영의 난맥상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전에도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재전송을 둘러싼 갈등, 스포츠 중계권 문제,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도 조정자 역할을 못했다. 방송통신 융합 대응이나 통신산업 경쟁력 강화정책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새로운 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책은 사회적 가치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의사결정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위원회는 정치권력뿐 아니라 여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조정과 합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기구다. 따라서 위원들은 추천받은 정파와 상관없이 전문성에 근거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위원들이 정파의 이해를 대변한다면 조정과 합의보다는 다수결에 의해 정책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극단의 갈등과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현 방송통신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구이면서 위원장이 책임지는 독임제 성격의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또 대통령 직속 기구다. 이런 구조에서는 위원장이 정파를 초월해 가치중립적으로 방송의 독립성을 실현하는 일이 쉽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의 공익성과 통신산업의 경쟁력이라는 서로 다른 정책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방송시장에 경쟁 도입으로 산업성을 강화하는 정책인 ‘종편채널’이 도입됐다. 이에 대해서는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일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국내외 방송 콘텐츠를 거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를 문화적, 산업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방송통신 융합이 IPTV 도입과 기구통합을 위한 수사였다는 의구심이 든다. 지상파 디지털 전환 이후 반환되는 주파수 이용에 대한 정책 역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중장기적인 주파수 활용 정책 부재로 시장에서 기술개발이 지연되고 구체적인 사업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은 여론을 형성하는 공론장 기능을 통해 국민의 일상생활과 정치·경제 체계를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유지, 발전되는 근간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방송의 독립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의 독립성 실현이라는 설립 목적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어렵게 도입된 제도이니만큼 그 기구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나타나는 폐해와 방송의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개편은 시급해 보인다. 개편을 위해서는 초기 방송위원회부터 방송통신위원회까지 운영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방송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융합 환경에 대한 대응과 통신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영국 호주 이탈리아 등이 채택하고 있는 정책과 규제를 독임제 정부부처와 독립 규제위원회가 나누어 담당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때도 규제위원회는 정부부처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성숙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확인하고 있다. 공동체의 미래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규제기구 정착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아무리 부패한 사회라도 건강한 방송이 기능한다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만제(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사풍향계―이만제] 방송통신위원회 이대로는 안된다
입력 2012-07-18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