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성기] 나라 이름은 바뀌어도

입력 2012-07-17 20:16


어제는 대한민국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이었다. 2007년까지 국경일로 공휴일이었는데 그 후로는 공휴일 목록에서 빠지는 바람에 국민들의 관심이 옅어지고 있지 않나 우려되기도 한다.

누구나 잘 알듯이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과는 달리 제1조에 국명을 밝히지 않는 나라들도 많다. 독일 헌법에서 국명은 제20조에 가서야 나온다. 독일 헌법 제1조 1항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존엄성은 불가침이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이다.’

국가권력보다는 국민을 우선시하는 차원에서 이 조문이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헌법 제1조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보다 국민 존엄성이 우선

대선 후보로 부각되고 있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 캠프의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이다. 국가권력보다는 국민의 기본권과 존엄성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긴 좋은 문구보다는 그 뜻을 실천하는 게 더욱 중요할 것이다.

문구로 따지면 북한 헌법에도 ‘사람 중심의 세계관’(제3조), ‘사람 중심의 사회제도’(제8조)라는 말들이 나온다.

우리 헌법 제1조도 ‘민주공화국’이라 하였으므로 국민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우선시한다는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고종은 중국과 맞서기 위해 1897년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갖고 국명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열강의 세력들 사이에서 부대끼다가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 겪은 후 독립협회와 일부 수구파의 지원으로 파격적인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한의 ‘한(韓)’은 안정복이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정통성 있는 우리나라 이름들 중 하나로 지목한 마한에서 유래됐다. 마한은 중국에서 내려온 기자의 후손이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고, 전국칠웅 중에도 ‘한(韓)’나라가 있다. 고종은 그 점을 염두에 두었는지 ‘클 대’ 자를 써서 ‘대한’이라고 했다. 상해임시정부 역시 고종의 뜻을 존중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을 사용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한국’이 한국(韓國)이 아니라 환국(桓國), 즉 환한 나라, 밝은 나라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제헌국회 의원이요 헌법 초안자인 유진오는 국명을 ‘대한민국’이라고 했을 때의 문제점을 의식하고, 일본이 삼킨 국명을 되찾아 ‘조선’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심의위원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꺼려지면 그냥 ‘한국’으로 하자고도 했다.

토의와 격론을 거듭한 끝에 ‘대한민국’으로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1948년 7월 17일부터 우리나라 이름이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이 되었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두 달 후 북한이 헌법을 제정하면서 가져가버렸다.

‘대한민국’은 불과 70년도 되지 않은 이름인 셈이다. 졸본부여, 흘승골성, 서벌처럼 비슷한 역사를 가진 이름일 뿐이다. 어차피 통일이 되면 나라 이름을 다시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권력의 민간인 사찰은 위헌행위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명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과 존엄성은 우리나라가 어떤 이름을 가지든 우선시되어야 할 덕목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정부 권력의 민간인 사찰은 악덕 중의 악덕이요 헌법 정신을 유린하는 심각한 위헌행위이다.

예수도 그 당시 국가권력과 종교권력이 국민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무시하고 안식일 율법을 강요하고 있을 때 과감히 선언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조성기(소설가·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