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특허괴물

입력 2012-07-17 19:04

미국 헌법에는 특허권이 명시돼 있다. 헌법을 만들 때 농부와 상인, 평범한 기술자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식 계급사회를 미국에 재연할 수 없다는 절박함도 담겨 있었다. 이후 미국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지적재산권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헌법이 보장한 이 특허권이 지금의 특허괴물(patent troll)을 만들었다. 특허괴물은 개인, 기업의 특허를 돈을 주고 산 뒤 로열티 수입을 챙기는 회사를 나쁘게 표현한 말이다. 보유한 특허권을 무단으로 사용한 상품이 출시되면 곧바로 로열티를 요구하고, 협상이 안 되면 소송을 걸어 막대한 보상금을 챙긴다. 당연히 반발도 거세다. 개인의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특허권을 강력히 보호했지만 괴물의 활동까지 보장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특허괴물이 사회·경제적 문제가 되면서 미국에서는 토머스 에디슨이 특허괴물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마저 일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개발이 거의 끝난 기술에 수명을 늘리는 기능을 첨가한 뒤 특허를 얻었다는 주장이 논쟁을 촉발했다. 에디슨은 1870년대 후반 백열전구를 개발하고, 1880년 특허를 얻었다. 하지만 그전에 영국에서 조지프 스완이 백열전구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모든 과학기술이 그렇듯 새 이론이 등장하고, 상업화한 기술이 나오고, 누군가 특허를 내 돈을 번다. 에디슨도 백열전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했을 수 있다.

에디슨은 소송에 휘말려 큰 고생을 했다. 홈슨하프튼, 웨스팅하우스 등 2, 3위 업체가 1위였던 에디슨전구회사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냈다.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이 보유한 특허를 제외한 백열전구 관련 나머지 특허권을 모두 사들인 뒤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에디슨은 결국 1891년에야 승소해 특허를 보장받았지만 2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쓴 뒤였다.

에디슨의 소송을 대리했던 미국 로펌 롭스앤그레이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전 세계 수많은 로펌 중 특허 분야에서 최고라는 회사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특허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글로벌 경제권과 미국 법체계 안에서 특허권을 보장받는 방법을 확실하게 연구하지 못했다. 법률시장 개방의 시대, 배워야 할 것도 지켜야 할 것도 참으로 많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