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야기] ② 오직 1등만 기억하기 고대부터 뿌리깊은 유산
입력 2012-07-17 22:01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공보다 노력인 것처럼 올림픽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다.”
근대올림픽 재건자인 쿠베르탱 남작의 말이다. 그러나 우승자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성대한 시상식장에서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승자에겐 영광을, 패자에겐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냉정한 현실을 확인할 뿐이다. 현대 올림픽은 3위까지 시상대에 설 수 있지만 고대올림픽은 단지 1등만 뽑는 대회였다. 2등 이하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고, 기록조차 되지 않았다. 승리한 선수에겐 거대한 연회가 베풀어졌지만 패배자는 조용히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심지어 패배를 불명예로 여긴 스파르타는 시민들에게 권투와 격투기 종목의 출전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오직 승자만 기억하는 못된 사회는 고대올림픽부터 싹텄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4대 국민축제 가운데 가장 성대했던 올림피아 경기 우승자에게는 올리브 생나무 가지로 엮은 관을 씌워줬고, 올림피아에 버금가는 피티아 경기 챔피언에게는 월계관이 주어졌다. 챔피언에게 모두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개최국 생태계에 따라 나무의 종류도 다르다. 고(故) 손기정 선생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받아 현재 서울 손기정공원에 심어진 월계수 화분은 월계수가 아닌 대왕 참나무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이 같은 전통을 이어받은 쿠베르탱은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 우승자에게 올리브가지로 만든 관과 우승증명서, 그리고 은메달을 수여했다. 차점자에겐 월계관과 동메달을 줬지만 3위 선수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1908년 런던올림픽에 가서야 1·2·3등 선수에게 현재처럼 금·은·동메달이 수여됐다. 현재와 같은 시상식을 도입한 최초의 대회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였다. 3단으로 만든 시상대가 처음 등장했고, 메달리스트 출신국 국기의 게양, 국가연주가 이때 등장했다.
올림픽 메달은 반드시 최소 6㎝ 지름에 두께는 3㎜로 한다. 하지만 금메달은 적어도 6g의 금으로 도금해야 한다. 이번 런던올림픽 메달은 지름 8.5㎝ 무게 400g으로 역대 대회 중 가장 크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