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계약서’ 강요까지… 중소업체 울리는 대형 유통社

입력 2012-07-17 18:51


공정위,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6곳 적발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소 납품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판매수수료율이나 상품대금 지급 조건 등 핵심 내용이 빠진 ‘백지 계약서’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달리 해외 유명브랜드 기업과의 계약서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기재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부터 2개월 동안 롯데·신세계·현대 등 3대 백화점과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3대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 이 같은 내용의 ‘백지 계약서’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자 등과 계약할 경우 즉시 계약서를 납품업체에 주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시행령을 통해 판매수수료, 판촉사원 수 등 구체적인 관련 내용을 기재토록 하고 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백화점은 납품업체로부터 상품을 외상 매입해 판매한 뒤 판매수수료(장려금)를 제외하고 납품대금을 지급하는 ‘특약매입’ 방식의 거래를 하고 있다. 백화점들은 이런 계약 형태의 특성을 이용해 중소 납품업체들과 계약할 때 상품대금 지급 조건, 판매수수료율, 판촉사원 수, 매장위치 및 면적, 계약기간 등을 공란으로 남겨 둔 사례가 많았다.

주로 직매입 거래를 하는 대형마트들은 일반적인 계약 내용은 전자계약으로 체결한 뒤 핵심적인 내용은 부속 합의서에 담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들은 납품업체 명판과 인감만 찍힌 상태에서 나머지는 공란으로 남겨둔 부속 합의서를 미리 받아두고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신 장려금률 지급조건, 판촉사원 파견 합의서, 반품합의서 등의 핵심 내용은 유통업체 편의에 따라 그때그때 채우고 있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은 백지 계약서를 넉넉하게 받아놓은 뒤 수시로 변경되는 계약조건을 채워 넣거나 아예 계약기간이 끝난 뒤 형식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특히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은 해외 유명브랜드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는 계약서에 거래 형태, 대금지급 조건 및 기간, 매장별 판촉사원 파견, 판매규모별 판매수수료 현황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재했다. 반면 국내 유명브랜드 기업과의 계약에서는 중소 납품업체처럼 핵심 내용을 공란으로 남겨두는 계약서를 사용하고 있었다.

공정위는 대형 유통업체의 백지 계약 관행은 납품업체에 과도한 판촉비용을 부담시키거나 지나치게 많은 판촉사원을 요구하는 등의 불공정 행위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우선 대형 유통업체들이 스스로 ‘불완전 계약서’ 작성 관행을 개선토록 한 뒤 그동안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시정조치에 나설 계획이다.

해당 유통업체는 “관행적으로 잘못하고 있었던 부분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백화점이나 마트의 경우 행사가 많아 수시로 계약 상황이 바뀌는 영업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해명했다.

맹경환 임세정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