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풀은 눕는다

입력 2012-07-16 09:55


시인 김수영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빨리 눕는다…’라고 노래했다. 특유의 감수성과 강렬한 흡인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이다. 이 시가 던지는 주제와 별개로 이 시의 말은 공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정권을 쥐고 흔들던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무도한 자들을 죽여 질서 있고 건전한 나라로 만든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치를 하면서 어찌 살인을 쓴단 말인가. 그대가 선을 지향하면 백성들이 절로 선해지는 법이다. 윗사람의 덕은 바람이요, 백성의 덕은 풀이다. 바람이 불면 풀은 부는 바람을 따라 눕게 마련이다.”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폭압의 정치적 방법은 용인되기 어렵다. 나라 전체에 그 폭력성이 만연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인용한 말은 맹자가 공자의 말을 받아 “위에서 좋아하면 아래에서 그 정도가 훨씬 심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부연한 것이다. 공자의 의도를 예리하게 짚은 해석이다. 어찌 폭압에만 한정될 것이며, 정치에만 한정될 문제겠는가. 어질고 선한 정치도 마찬가지이며, 문화와 풍속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전국시대 말기에 한비자(韓非子)는 “초나라 영왕이 허리 가는 미인을 좋아하자 온 나라에 굶어죽는 여인이 많이 나왔다(楚靈王好細腰 而國中多餓人)’하였다. 작은 기호 하나가 가져오는 결과가 이러할진대 뭐 하난들 신중하고 또 신중히 해야 하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더구나 ‘군자의 허물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 잘못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알고 고치면 모두 존경한다.(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人皆見之 更也人皆仰之)’라는 자공의 말이 있지 않던가.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