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진정한 민심 알아내기
입력 2012-07-16 20:04
“민심이 누구의 의견인지,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제대로 논의해야”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방식 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이 비박(非朴·비박근혜) 진영 후보들의 잇단 사퇴와 함께 일단락되고 있다. “경기를 목전에 두고 룰(규칙)을 후보에 맞추어 바꿔서는 안 되고, 후보가 주어진 룰을 존중해야 한다”는 박근혜 후보의 원칙론이 또 한번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박 후보는 소통 불통이라는 오명까지 얻어가면서 끝까지 비박 진영의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관성 준수의 대의명분을 공적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속사정이 있어 보인다.
박 후보는 2007년 제17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전체 비중의 80%를 차지했던 대의원 득표에서는 이겼으면서도 20% 비중의 여론조사에서 졌다. 그리고 후보 자리를 이 후보에게 넘겨주었다.
박 후보는 여론조사에 대한 노이로제 증상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비박 진영 사람들이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때의 후유증이 매우 컸던 것 같다. 정당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자칫하면 과거의 악몽을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오픈프라이머리 안은 애초부터 받아들일 수 없는 제도였다.
당 대표 경선 과정에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식은 여야 모두 공유하고 있다. 당원의 의견인 ‘당심’과 일반여론인 ‘민심’ 중 어느 쪽에 얼마만큼의 더 큰 비중을 둘 것인가를 놓고 서로 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당 대표 경선뿐만 아니라 모든 선거에서 세칭 ‘민심’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심에 비해서 ‘민심’이 누구의 의견이며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다.
서구에 비해서 우리의 여론 연구는 그 역사가 매우 짧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사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2002년의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간의 단일화 협상, 2007년의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 간 단일화도 모두 여론조사를 근거로 결정했다. 두 사례 모두 승패는 간발의 차이였다. 최근의 총선에서도 여야 모두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지역구의 후보를 선발했다.
누구나 민심 혹은 여론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 하지만 막상 그 실체를 파악하려 들면 매우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民)’ 혹은 ‘공중’을 유권자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학술적 연구에 의하면 전체 유권자의 30% 정도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없고 투표도 하지 않는 무관심층에 속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들의 의견을 여론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
투표에 참여하는 나머지 70% 유권자들의 절반 정도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나 지식이 없이 즉흥적으로 투표한다고 한다.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안정된 의견 없이 즉흥적 결정을 하는 이들 집단의 의견을 진정한 여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온라인 투표나 모바일 투표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여론 측정을 위한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선거나 여론조사 조작 논란은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IP중복 논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표본추출이나 투표과정에서 임의적으로 조작하거나 악용할 소지가 매우 많다. 그리고 이런 방법에 의해 파악된 젊은 층 위주의 의견을 사회 일반 여론으로 일반화시킬 수 없다.
여론 개념에 대한 합의 도출과 그런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론을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여론 조작의 뿌리를 잘라내 성숙한 정치문화를 이루어야만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석(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