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금리 대출자, 금리 0.25%P 인하에 ‘뒤통수’

입력 2012-07-15 18:58


“정부 말을 들은 제가 바보지요.”

지난해 말 A은행에서 연 4.95% 고정금리로 주택담보대출 4억3000만원을 받은 직장인 진모(48)씨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소식을 듣고 밤잠을 설쳤다. 당시 진씨는 변동금리 대출을 희망했지만 A은행에서는 “정부가 고정금리 대출을 적극 주문하는 데다 금리가 싸고 혜택도 많다”면서 고정금리 대출을 추천했다. 또 한국은행이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거나 동결하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반년 만에 상황이 돌변했다. 지난 12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면서 당장 이번 주부터 시중은행의 변동금리 대출 금리가 인하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대출금리가 내려가지만 진씨 같은 고정금리 대출자들은 처음 계약한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진씨는 “결국 또 정부의 감언이설에 속았다”며 허탈해했다.

기준금리 인하로 고정금리 대출자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가계대출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은행들을 압박해 고정금리 대출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신규 고정금리 대출자는 크게 늘었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신규취급액 기준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지난해 5월 11.4%에서 지난달 44.3%로 1년 새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금리가 지속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금통위가 시장 예상보다 빨리 기준금리를 낮춘 것은 그만큼 경기 부진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1∼2차례 추가 인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준금리가 추가로 내려가면 고정금리 대출자들은 변동금리 대출을 받는 것보다 큰 폭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자율이 0.25% 포인트 인하되면 진씨 같은 4억원 대출자의 경우 연 100만원 이상의 이자를 손해 보는 셈이다.

현재 고정금리 대출자들은 금리 안정성 등을 이유로 변동금리 대출에 비해 연 0.5%포인트 안팎의 금리를 더 물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우량고객 주택담보대출은 변동금리가 연 4.1∼4.3%인 데 반해 고정금리는 연 4.7%에 달한다. 하나은행도 변동금리(연 4.2∼4.4%)에 비해 고정금리(연 4.7%)가 높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유럽 재정위기에서 비롯된 세계 경기침체 흐름을 읽지 못한 채 근시안적으로 고정금리 대출을 확대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장기 고정금리 대출은 보통 만기가 10년 이상인데 긴 안목으로 보면 여전히 고정금리 대출이 유리하다”고 해명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