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경제] 기업도 갈증… 대형 상장사 1/3이 현금 부족할듯

입력 2012-07-15 18:52


다시 위기다. 경기후퇴 공포가 확산되면서 한국 경제가 ‘돈 가뭄’에 봉착했다. 한국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고, 국공채를 사들이면서 돈을 풀고 있다. 돈이 돌아야 시중은행 대출 증가, 통화량 확대, 시중금리 하락, 소비·투자 증가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하지만 증시 거래대금이 반 토막 나는 등 자본시장에서는 돈이 돌지 않고 있다. 대형 상장사 가운데 3분의 1은 영업으로 거둬들이는 수익이 줄어들면서 올해 ‘현금 부족’에 처할 전망이다.

기업들에도 ‘돈맥경화’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대형 상장사 중 3분의 1이 올해 현금 부족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특히 SK텔레콤, 삼성물산, LG디스플레이,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간판급 대기업과 공기업 20곳의 잉여현금흐름이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추산됐다.

15일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예측치를 내놓은 98개 상장사의 올해 잉여현금흐름(연결재무제표기준) 전망치는 18조4458억원으로, 지난해 말 39조9590억원보다 53.8% 급감했다. 또 잉여현금흐름이 적자로 추정되는 기업은 분석대상의 30%에 육박하는 29곳에 달했다.

반면 잉여현금흐름 전망치가 적자가 아니면서 증가세를 나타낸 기업은 98곳 가운데 21.4%에 해당하는 21곳에 그쳤다. 나머지 78.6%는 적자 또는 감소세를 나타낸 것이다.

잉여현금흐름이 줄어든다는 것은 기업으로 유입되는 자금보다 유출되는 자금이 많다는 뜻으로,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이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렇듯 대기업들조차 현금 사정이 나빠진다는 전망은 유럽과 중국 등 대외경기 악화로 인한 수출 감소로 실적부진이 예상되는 데 따른 것이다.

올 들어 잉여현금흐름 전망치가 적자로 전환한 기업은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SK텔레콤, 삼성물산, SK하이닉스, 한화케미칼, 현대상선,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현대하이스코, 제일모직, CJ대한통운, 만도, CJ제일제당, LG상사, 아시아나항공, LG이노텍, LG생명과학, 두산중공업, 넥센타이어 등 20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을 통한 현금 확보에 나섰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발행 규모는 12조2917억원으로 전월보다 25.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 기업은 고육지책으로 사옥과 보유 부동산 매각에도 나서고 있다. 최근 하이트진로가 서울 서초동 사옥을 엠플러스자산운용에 팔았고, 동양그룹은 이마트에 동양리조트를 매각한 바 있다.

삼성경제연구원 김성표 수석연구원은 “기업들의 유동성 문제가 아직은 심각한 단계는 아니지만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혜숙 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