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거짓의 속성과 위력

입력 2012-07-15 17:49


‘뷔뜨와 현상’이라는 말이 있다. 192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단편 ‘뷔뜨와 Putois’라는 작품에서 유래한 말이다. 저녁식사에 초대받는 주인공은 초대에 가지 않기 위해서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낸다. 지어낸 이야기 속의 주인공 뷔뜨와라는 인물은 마을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점점 구체적인 실체로 변모해 간다. 나중에는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낸 장본인마저도 허구의 인물을 마치 실존인물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뷔뜨와 현상’이란 바로 거짓이 가진 속성과 위력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거짓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이란 일단 탄생을 하면, 그것은 마치 실존하는 생명체와 같이 자기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진실을 밀어내려고 한다. 그리고 궁극에는 마치 자신이 진실인 것처럼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할 당시 나는 매일 아침마다 거래처 여직원과 업무상 통화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목소리와 느껴지는 분위기가 재료가 되어서 의도하지 않게 내 상상 속에는 그 여자의 모습이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겠지!’ 내 머릿속에 그려진 몽타주는 어느새 고착되어버렸다. 몇 년 후 우연한 때에 그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실물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내 머릿속에 그려진 상상의 몽타주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상상 속의 모습은 여전히 진실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실물을 확인하고 난 뒤에도 상상 속의 모습은 오히려 실물을 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거짓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유명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하루는 시골의 한 마을을 지나다가 그 마을에서 ‘찰리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가 열린 것을 알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찰리 채플린은 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진짜가 가짜들 속에서 함께 경합을 벌였던 것이다. 그런데 웃지 못할 결과가 나왔다. 놀랍게도 채플린은 3등이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있었던 것이다. 거짓의 속성과 위력이란 마치 이와 같은 것이다. 어느새 진짜를 밀어내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은 거짓의 속성과 위력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말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내가 무심코 뱉은 말 속에 담긴 거짓의 요소는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거짓의 속성과 위력을 정확히 통찰하는 사람만이 이 무서움을 알고 있다. 이들은 교회 안에 떠도는 말들을 지나치리만큼 조심스레 다룬다. 함부로 믿거나 속단하지 않는다. 무심코 말을 보태지도 않는다. 그 대신 배후에 있는 거짓의 아비, 사탄의 손길을 예의주시하며 기도로 영적싸움을 한다. 이런 사람이 너무나도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서울 내수동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