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춘근] 머리국가와 몸통국가의 차이
입력 2012-07-15 18:19
우리들이 사용하는 물건에는 예외 없이 그 물건을 만든 나라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심지어는 식품에도 포장지에 생산국이 명기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나라의 이름이 찍혀 있는지에 따라 그 물건이나 음식물을 안심하고 사기도 하고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기도 한다. 스위스제 시계, 독일제 자동차, 일제 카메라 등은 우리의 인식 속에 최고라고 각인된 물건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 중에 가장 이름이 많이 찍힌 나라는 단연 중국이다. 세계인들 거의 대부분이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찍힌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살아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사라 본지오르니는 ‘1년 동안 중국제 없이 살아보기’라는 책에서 중국제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묘사했다. 이쑤시개부터 수십만t 유조선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Made in China’ 아닌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물어야 할 정도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 아래 부분에는 대한민국 전자 회사의 영문이름이 큼직하게 찍혀있지만, 컴퓨터 뒷면에는 ‘Made in China’라는 글자가 조그맣게 새겨져 있다.
미국의 어린 학생들이 늘 사용하는 문구용품 중에 중국제가 아닌 것이 없다. 연필, 크레용, 볼펜, 공책은 물론 입는 옷과 가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중국제다. 미국 남자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미군 장난감 병사 지 아이 조(G.I. Joe)도 중국제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이 중국제이다보니 미국 사람들 중에는 중국이 미국보다 더 부자나라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수십%에 이를 지경이다.
그러던 중에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 국회의원들이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미국 선수들의 유니폼이 중국제라는 사실에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해리 리드 상원의원(네바다 주)은 “중국제 유니폼을 모두 수거해서 쌓아놓은 다음 불 질러 버리고 미국제 유니폼을 새로 만들어 입혀야 한다”며 흥분했다. 오래간만에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이 이 문제를 놓고 공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의 월마트라는 초대형 슈퍼마켓에 가면 황당할 정도로 값이 싼 물건들이 즐비하다. 인건비가 과연 포함되어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런 물건도 많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즈크란스는 국가의 종류를 ‘머리국가(Head Nation)’와 ‘몸통국가(Body Nation)’로 분류하고 머리국가란 ‘무엇인가를 발명하는 나라’이며 몸통국가란 ‘머리국가가 발명한 물건을 제조하는 나라’라고 정의 내렸다. 대표적인 머리국가로 미국, 독일, 일본을 예로 든 그는 중국을 몸통국가의 대표로 보았다. 중요한 것은 머리국가만이 진정한 부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지 남의 물건을 제조하는 나라는 결코 진정한 부국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지금처럼 짝퉁, 불량품 천국이라면 중국은 영원토록 미국의 맞수가 될 수 없다. 미국 회사의 이름이 큼직하게 찍혀 있는 상품의 뒷면 한 귀퉁이에 깨알만한 크기로 ‘Made in China’라고 아무리 써 놓아봤자 한계가 있다. 최고급으로 호평 받는 애플 휴대전화 뒷면에는 심지어 ‘캘리포니아에서 고안(design)되고 중국에서 제조되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미국 국회의원들은 자국 선수의 유니폼이 중국제라고 흥분하지만 남의 나라 선수단 유니폼까지 만들어 팔아야 하는 중국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