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최정욱] 盲目의 시대

입력 2012-07-15 18:39


지난달 23일 가자지구 남부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여섯 살짜리 알리 알쉬와스라는 어린이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2명이 숨졌다. 이집트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에 이뤄진 교전 중단 합의가 무시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병대의 로켓포 공격이 무색하게 하나를 받으면 백으로 돌려주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지난달에만 공습으로 15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는 2008년 12월 팔레스타인 민간인 1300여명이 사망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 이후 일상화된 폭력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러한 갈등의 근원은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이 옛 고향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온주의’에 있다. 시온주의를 지지한 영국, 미국 등 강대국들의 도움으로 이뤄진 1948년 5월 이스라엘의 건국 선포는 토착민이었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중동전쟁이 거듭되면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넓어졌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만큼 땅과 재산을 잃고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온주의는 맹목(盲目)적인 신념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현대 유대인 대다수가 바빌론이나 로마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한 고대 유대인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 아더 케스틀러는 1976년 ‘13개 지파’라는 저서를 통해 유대인들은 8세기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카자르인들과 혈통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밝혔다. 실제 세계 유대인들의 80% 이상은 ‘아슈케나짐’(동유럽 등에서 이주해온 유대인)이다. 또 언어학자 폴 웩슬러는 현대 이스라엘의 히브리어가 음운체계에서 아랍어 등 셈어족(語族)이 아닌 슬라브어족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유전학적으로도 유대인들이 아랍인들보다 아르메니아인 등과 가깝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특별한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독점적 권리가 있다는 시온주의의 근거를 흔드는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1998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2000년 동안 추방과 박해에도 살아남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후손들’이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다”며 이스라엘 건국 50주년 축사를 남기기도 했다(홍미정 서정환, ‘울지마 팔레스타인’).

이 같은 맹목성은 18대 대선을 앞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광장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대학생들이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출마 선언 전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대학생 발언자의 머리채를 잡는가 하면 “빨갱이는 북으로 가라”는 욕설을 하기도 했다.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면 왜 ‘빨갱이’가 되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최근 통합진보당 일부 의원들의 종북 논란 이후 이러한 맹목적인 ‘신(新)공안정국’ 상황은 더 확산되는 모습이다. 특히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네티즌을 향해 ‘좌좀(좌익좀비)’ 등의 원색적 용어를 동원한 비난이 늘고 있다. 대개 아무런 논리도 없고, 일방적 규정만 있는 공격이다. 이 때문에 트위터 계정을 폐쇄한 이들도 있다.

맹목은 대화와 사리분별을 마비시킨다. 역사적으로도 갈등과 폭력의 주범이었던 만큼 성숙한 사회라면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최정욱 디지털뉴스부 차장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