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메이드 인 차이나’ 논란
입력 2012-07-15 18:19
미국 ABC방송은 지난주 뉴욕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행인들을 붙잡고 입고 있는 옷을 일일이 뒤집어보게 했다. 미국인이 미제(美製) 옷을 얼마나 입는지 알아본 이 조사에서 ‘메이드 인 USA’는 고작 2%였다. ABC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eye-popping)” 충격적이라고 보도했다. NBC방송은 미 올림픽위원회 웹사이트에서 판매되는 티셔츠 등 345가지 기념품의 제조국가를 조사했다. 미국산은 30가지뿐이었고, 특히 옷은 100% 외제였다. 역시 호들갑 떨며 주요 뉴스로 전했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국산품 애용 캠페인을 연상시키는 보도가 잇따른 건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미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을 유니폼 때문이다. 미 올림픽위원회의 의뢰를 받은 미국 의류업체 랄프 로렌이 중국에 있는 공장에서 유니폼을 제작했다. 미국 국가대표가 ‘메이드 인 차이나’를 입게 되자 여야 의원들이 “유니폼을 태워버리라”며 분개했다. 애플이 중국에서 만든 아이폰에 열광하며 서로 먼저 사려고 밤새 줄서던 미국인들이 이번엔 랄프 로렌을 욕하는 글로 트위터를 도배했다.
마침 지난주는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나간 미국 제조업체들을 다시 불러들이자며 일자리 법안을 발의한 직후였다. 미 노동부 통계를 보면 의류제조업에 종사하는 미국인은 10년 전 35만명에서 지난달 14만명으로 줄었다. 미국에서 팔리는 옷과 신발의 98% 이상을 인건비가 싼 나라, 주로 중국과 필리핀 사람들이 만든다. 우아한 일자리가 널린 호황기에 미국인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지금 미국 실업률은 8%를 웃돌고 청년실업률은 20%에 육박한다.
미 운동용품업체 나이키는 지난달 런던올림픽을 위해 개발한 초경량 육상·농구 유니폼을 공개하며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를 입고 뛴다고 밝혔다. 중국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유니폼 제작을 미국 기업에 맡겼으나 이에 분노한 중국인은 거의 없었다. 중국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는 미국에서 벌어진 메이드 인 차이나 논란에 대해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일”이라며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보도했다.
미국은 생산 단가 때문에 개막식 유니폼을 중국에서 만들어야 했고, 중국은 첨단 기술이 부족해 대표팀 유니폼을 미국 기업에 의뢰했다. ‘공장’이 없는 미국과 ‘기술’이 없는 중국, 요즘 같은 불황에 더 초조한 건 미국인 듯하다.
태원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