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딸랑딸랑
입력 2012-07-13 18:42
국가정보원은 2006년 10월 국내 486인사들이 연루된 간첩단을 적발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사건이라는 ‘일심회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사건 피의자를 기소하면서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정당과 시민단체 등에 침투해 동향을 탐지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일심회가 이명박 정부 내에도 있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다. 최근 공개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내부문건에 따르면 이 기구는 “VIP(대통령)께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를 받는” 초법적인 조직이다. 구성원도 대통령과 동향인 영포라인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VIP께 절대 충성을 맹세하면서 공무원은 물론 민간인에 대해서도 전방위 사찰을 자행했다. 활동은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졌다. 윗선만 다를 뿐 ‘간첩단 일심회’나 ‘영포라인 일심회’나 거기서 거기다.
‘안술유칠(安術有七) 위도유륙(危道有六)’ 한비자 안위(安危)편에 나오는 글로, 나라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곱 가지 방법과 위태롭게 하는 여섯 가지를 일컫는다. 한비자는 ‘법을 안으로 굽혀서 일을 처리하는 것(?削於繩之內·착삭어승지내), ‘법을 법 밖으로 확대해 처리하는 것(?割於法之外·착할어법지외)’을 위도유륙의 첫째와 둘째로 꼽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비선라인을 활용함으로써 ‘착삭∼’했고, 민간인을 사찰함으로써 ‘착할∼’했다. 과잉충성이 부른 참사다.
없던 일로 갈무리됐지만 총리실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민주통합당 도종환 의원 작품 교과서 삭제 권고 논란도 일선 부처의 과욕이 낳은 희비극이다. 평가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자문도 구하지 않은 채 “정치적 중립성을 감안해 현역 정치인의 경우 수록을 배제하는 게 원칙”이라는 논리로 중학교 교과서 16종에 대해 수정, 보완을 권고했다. 순수 문학작품을 정치적 잣대로 재단한 전형적인 권력 눈치 보기에 다름 아니다.
미래권력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 캠프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캠프의 충성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5·16에 대한 재평가 시도가 그것이다. 박근혜 경선캠프에서 활동 중인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5·16은 당시로 볼 때 군사혁명이 맞다. 단순히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 없다”고 했다. 홍사덕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박 의원을 세종대왕에 비유하면서까지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는 그를 두둔했다. 한때 인기있었던 개그 프로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연상된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아버지의 행위를 폄하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박 의원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스가 그런다고 무조건반사 식으로 ‘예’ 하고 따라 가는 게 참모들의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논외로 하겠다. 합법적 민주정부를 총칼로 전복한 게 5·16이다. 그 과정에 시민의 참여는 없었다. 보통 이런 것을 혁명으로 부르진 않는다. 학교에서도 5·16을 군사정변으로 가르친다. 5·16을 쿠데타로 규정한 건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아닌 김영삼 정부 때였다.
도종환 의원 작품 삭제 해프닝에서 봤듯 이번 대선에서 박 의원이 승리한다면 교과서에서 5·16이 혁명으로 바뀌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5·16이 혁명이라면 12·12는 뭐라고 해야 하나. 또 10월 유신은. “과잉충성과 조급함은 항상 일을 그르친다.” 박 의원 캠프의 잇단 5·16 관련 발언 후 나온 새누리당 중진의원의 한탄이다.
이흥우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