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경제학] 어느덧 30년∼ 구단 흥망성쇠… 지역색 옅어지고 기업색 짙어져

입력 2012-07-13 18:42


지난해 7월 20일.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 기사를 검색하던 직장인 A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1위 삼성, 2위 KIA, 3위 SK, 4위 LG, 5위 롯데.’ 희한하게도 프로야구 순위가 정확히 재계 서열대로였다. 회식자리에서 A씨가 프로야구 순위를 화제 삼자, 자칭 프로야구 전문가인 동료가 아는 척을 한다. “옛날 해태가 잘나가던 시절인 줄 알아? 이제는 돈 많은 구단이 잘할 수밖에 없어.”

틀린 말이 아니다. 삼성 KIA SK 등 최근 5년간 우승팀의 모기업이 재계 선두그룹이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업계에선 그 이유로 프로야구 구단의 고질적인 적자 구조를 꼽는다. 선수들의 몸값은 치솟는 데 비해 입장료나 광고수익 등 매출은 비용증가분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3일 “대부분의 프로야구단은 모기업들이 한 해 적게는 100억원에서 많게는 300억원까지 지원을 해야 유지가 되는 ‘돈 먹는 하마’”라고 말했다. 따라서 홍보비로 수백억원을 지출할 만한 여력이 있는 대기업만이 프로야구단을 운영할 수 있고, 투자를 많이 받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구조가 갈수록 고착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8개 구단 가운데 넥센을 제외하면 나머지 7개 구단이 20대 기업그룹에 속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프로야구의 역사도 대기업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1982년 출범 이래 한국 프로야구 1군 무대에는 17개팀이 존재했다. 그 가운데 30년간 팀명과 지역 연고가 바뀌지 않은 팀은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뿐이다. 이는 곧 두 팀의 모기업은 30년간 한 번도 사세가 꺾이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의 경우 반도체와 IT 산업을 주력으로 그동안 부동의 재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짠물 경영’으로 유명한 롯데는 유통과 제과업에서 꾸준한 성장세와 M&A를 통해 재계 순위를 30년 전 50위권에서 5위권으로 올려놨다. 반면 1990년대 후반 무리한 외형 확장에 나섰던 해태와 쌍방울은 외환위기를 만나 맥없이 무너졌다.

프로야구는 그동안 지역색이 강했으나 점차 기업색을 띠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호남 팬들은 경기장에서 목청껏 ‘김대중’을 연호했다. 공교롭게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1997년 역대 최다(9회) 우승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해태 타이거즈는 마지막 우승을 했다. 이후 모기업과 함께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해태는 주요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며 남긴 돈으로 버티다 결국 2001년 기아차에 인수됐다. 2000년 이후 프로야구는 지역색이 옅어졌다. 대신 대기업들의 자존심 대결의 강도는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구단의 모기업 회장과 사장들이 잇따라 야구장에 나와 경기를 관람하는 사례도 부쩍 늘고 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