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카우치 포테이토

입력 2012-07-13 18:26

등받이가 낮은 소파 카우치와 감자를 뜻하는 포테이토가 결합된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는 소파에 누운 채 TV를 보며 감자칩을 먹어대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특별한 취미생활 없이 종일 TV 앞에만 앉아 있는 유형이다.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작가인 로버트 암스트롱이 1970년대에 처음 사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카우치 포테이토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선 TV리모컨이다. 미국 시카고 태생인 유진 폴리(1915∼2012년)는 전자기업 제니스에서 1955년 ‘플래시매틱(Flash-matic)’이란 무선 리모컨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움직일 필요 없이 그냥 생각만 해”란 광고 카피로 판매에 들어간 헤어드라이기 모양의 이 리모컨은 첫 해에만 3만대나 팔렸다. AP통신으로부터 ‘TV의 기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폴리는 이런 공로로 1997년 에미상 특별상을 받았고 ‘카우치 포테이토족의 영웅’ ‘게으른 자의 아버지’란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카우치 포테이토식 운동 부족은 근육 감소로 인한 부상, 면역력 감퇴, 만성질환 발병률을 높인다. 호주 심장당뇨학회에 따르면 TV를 하루 1시간 더 시청하면 각종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성이 11% 높아지고, 매일 4시간 이상 TV를 보는 사람은 2시간 미만 시청자에 비해 사망 위험이 46% 높다. 이 때문에 베이비부머(1946∼64년 출생자)의 은퇴가 본격화된 미국에서는 카우치 포테이토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도 IMF 외환위기 이후 비디오 테이프 1∼2개를 빌린 다음 캔맥주를 사놓고 TV만 보는 카우치 포테이토족이 등장했다. 최근 한 생명보험회사 은퇴연구소가 은퇴자들의 여가 활용법을 조사한 결과 60대 남성의 경우 카우치 포테이토형이 37.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도 남성 50대는 3시간59분, 60대는 4시간17분, 70대는 4시간32분이나 되고 여성은 이보다 1시간가량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카우치 포테이토는 고도산업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주의적 삶의 형태다. 우리도 도시화·산업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를 잃고 건강까지 위협받게 됐다. 노인들이 야외활동이나 사교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여건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