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안남시온교회] “하나님, 해충들이 작물을 망치지 않게 늘 함께해 주시옵소서”
입력 2012-07-13 18:26
충북 보은을 거쳐 옥천으로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가면 강원도 어느 계곡 못지않은 비경이 펼쳐진다. 골 깊은 산이 웅혼한 기상을 뽐내고 있고 금강 줄기는 산골 마을을 굽이돌아 대청호로 흐른다. 옥천군 일대에 핏줄처럼 뻗어있는 좁은 산길은 군락을 이룬 야트막한 시골집들로 이어진다.
‘불모의 농촌’에서 23년 명맥 이어온 교회
안남시온교회는 옥천군에서 가장 작은 면인 안남면 잔다리에 있다. 43㎡(13평) 정도의 좁고 낡은 농가주택 내부를 개조해 교회로 쓰고 있다. 교회 곳곳은 금이 가 있고 십자가 탑은 빨갛게 녹슨 지 오래다.
안남면 일대에는 주민 1000여명이 곳곳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대부분 대대로 유교·불교를 믿어 온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그러다보니 ‘예수쟁이로 찍힐까 걱정스러워’ 교회에 다니는 것을 꺼리는 것이 마을 분위기다. 안남시온교회가 터를 잡은 지 23년이나 됐음에도 주민들 중 교회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승용 목사는 2006년부터 이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이곳 주변 마을에는 사찰이 없는 곳이 없을 만큼 불교 색채가 강한데다 촌수를 엄격하게 따지는 집성촌 특유의 유교 문화가 있어요. 그러니까 나이 드신 분들이 교회에 나오고 싶어도 집안에서 미운털이 박힐까봐 선뜻 그러기 어렵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다른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젊은이들을 찾기 어렵다. 안남시온교회에 출석하는 이들 역시 고향을 지키는 고령의 농민들이다. 성도 27명 가운데 어린이 10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70세 이상이다. 50대 후반 성도가 젊은 축에 끼일 정도다.
성도들은 작황에 따라 소득이 들쭉날쭉한 벼·보리농사에만 매달릴 수 없어 토마토나 깻잎을 재배하거나 칡을 캐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기도의 주된 내용도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해충들이 작물을 망치지 않게 하나님께서 늘 함께해 주시옵소서.”
최고령 성도인 이동춘(85) 할머니는 안남시온교회와 인연이 깊다. 16세 때 강 건너 청동마을에서 잔다리로 시집을 온 이 할머니는 원래 불교신자였으나 1989년 교회가 세워지면서 크리스천이 됐다. 안남시온교회 원조 성도인 셈이다. 그해 세 살짜리 손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비통한 마음에 한숨만 쉬다가 우연히 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것. 이 할머니는 “교회에 나오니께 휑한 맘이 사그라졌어. 절에 다니던 시어미와 영감이 엄청 반대했지. 그래도 교회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어쩌겄어. 목사님들이 모두 엄청 좋으니께”라며 크게 웃었다.
깨농사를 짓는 이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어야 간신히 걸음을 뗄 수 있을 정도지만 주일 예배당을 찾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 “하루는 교회에 가려는데 성경책이 없어서 찾아보니까 변소에 있더라고. 돌아가신 양반(남편)이 버린 거였어. 씻었는데도 냄새가 나서 교회에서 새로 하나 받았어.”
교회에서 나와 완만한 비탈길을 한참 오르면 대청호 상류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절경이 나타난다. 강변에 텐트를 치고 휴식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금강을 경계로 교회가 있는 쪽은 안남면, 건너편은 동이면이다. 교회에서 강변까지 40∼50분이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고령의 성도들은 예외다.
이 목사는 낡은 노란색 봉고차로 안남면과 동이면을 잇는 가덕교를 오가며 잔다리, 종배리, 가덕리 등지에 흩어져 있는 ‘어르신 집사님’들을 모시러 다닌다. 주일 예배 때뿐 아니라 평일에도 사실상 마을 어르신 전용이다. 매일 20여㎞ 운행은 기본이다. 대부분 울퉁불퉁 비포장 길이어서 겨울에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이 목사의 봉고는 특별히 승하차 정류장이 없다. 마을을 다니다가 “장 봐왔는데 집까지 좀 데려다 줘”라는 요청이 있으면 당연히 ‘즉석 배달 서비스’다. 배진순(69) 할머니는 “농사는 시기 놓치면 안 돼서 교회에 자주 나가지는 못해. 솔직히 강 건너까지 차가 오니까 목사님 봐서 (교회에) 가는 겨”라면서 웃었다.
문화·복지센터를 꿈꾸는 시골교회
몇 년 전부터 이 마을에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전도에 걸림돌이 된 경우도 있었다.
문화적 차이, 경제적 어려움, 육체적 고통에다 언어적 불통까지 겹쳐 가정 불화를 겪는 가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주 여성들이 교회에 가고 싶어도 시부모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이 마을에서만 이주여성 8명이 집을 나갔다.
그러나 이 목사와 김은미 사모의 사랑과 봉사가 다문화 가정을 변화시켰다.
이한솔(8)양 가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솔이 엄마 호티투(30)씨는 베트남 출신이다. 한솔이는 지난해 봄 다리를 다쳐 한동안 깁스를 했다. 이 목사는 차가 없는 부모를 대신해 한솔이를 옥천읍의 병원에 데리고 다녔다. 한솔이뿐 아니라 부모들도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한솔이 할머니는 처음에 손녀가 교회에 나가는 걸 반대했다. 하지만 이 목사의 ‘사랑 나눔’에 감동을 받았다. 지금은 감자를 캐면 “한 소쿠리 가져가라”면서 누구보다 먼저 이 목사에게 전화를 할 정도로 살가워졌다. 8년 전 이곳으로 시집 온 호티투씨는 “비닐하우스에서 깻잎 농사를 하느라 교회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우리 한솔이를 가족같이 보살펴 주시는 목사님이 정말 고맙죠”라고 말했다.
안남면은 지역아동센터는 물론 미술, 피아노 학원 등 사설교육시설이 없는 낙후한 지역이다. 주민들은 새벽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논밭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자식 교육에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더러 옥천까지 나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마을버스가 1∼2시간 간격으로 운행될 만큼 교통 사정이 나빠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김은미 사모는 지난해 3월부터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핸드벨 연주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성탄절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주축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불교신자라서 애들을 교회에 보낼 수 없다”고 했던 부모들이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후 김 사모는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보다 제대로 된 연주를 가르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대전까지 가서 전문 연주자에게서 핸드벨을 배웠다. 한 개에 30만원씩 하는 핸드벨 구입 비용에 보태기 위해 김 사모는 지난 5월부터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다.
피아노 교습도 거르지 않는다. 김 사모는 예배당에서 어린이 6명에게 일주일에 4차례 무료로 피아노 레슨을 해주고 있다. 그는 “피아노 전공자가 아니지만 어렸을 때 배워둔 게 있어서 기초적인 연주법을 가르친다”면서 “교회에 냉담했던 부모님들이 진심을 알고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어르신 성도들’이 직접 교회로 전화를 걸어 민원 아닌 민원을 접수하는 경우도 있다. “테레비(텔레비전)가 잘 안 나온다” “형광등이 껌뻑거린다” 등이다. 이 목사는 “찾아가보면 단순히 (텔레비전의) 외부입력 버튼을 잘못 누르신 경우가 많다. 형광등 같은 건 쉽게 갈아드리지만 세탁기가 고장 난 경우에는 서비스센터를 불러드리는 게 일”이라며 웃었다.
이 목사가 처음 사역을 시작한 교회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예밀교회. 그는 2003년 10월부터 2년여 몸담았던 예밀교회를 떠나 2006년 1월 안남시온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예밀교회 상황은 안남시온교회보다 척박했다. 이 목사는 “예밀교회에는 집사님이 딱 한 분 계셨고 마을 주민은 통틀어 10명도 안 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안남시온교회를 이전하기 위해 2010년 3월 교회 인근 담배건조장 부지를 매입했으나 비용 문제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있을 것”이라며 “할머니, 할아버지뿐 아니라 몇 명 되지 않는 어린이들에게 믿음의 씨앗이 내려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기독교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산간이나 농촌 지역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 목사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으로 답을 대신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안남시온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옥천까지 기차는 2시간10여분(서울역 출발·무궁화)쯤 걸린다. 시외버스는 동서울터미널 등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옥천에 도착하면 옥천역 인근 옥천시내버스터미널에서 안남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이 버스는 교회 근처까지 운행한다. 배차간격은 1시간 30분∼2시간.
자가용으로는 서울에서 3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청원분기점에서 청원상주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상주나들목을 거쳐 송평사거리에서 25번 국도를 탄다. 이어 상주·보은 방면으로 8㎞쯤 이동해 동정삼거리에서 575번 지방도로를 타고 안내 방면으로 10여㎞를 이동하면 현리삼거리가 나온다.
현리삼거리에서 37번 국도 대전·옥천 방면으로 진입해 인포삼거리까지 2㎞쯤 가다가 다시 575번 지방도로 안남 방면으로 들어가 8㎞쯤 가다보면 횡단보도 좌측에 교회가 보인다.
옥천(충북)=글 김경택 기자·사진 윤여홍 선임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