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의 해피 하우스] 가족 에고이즘
입력 2012-07-13 18:02
어느 해, 한 잡지사에서 ‘가정의 달’ 특집 원고로 ‘혈연주의와 물질주의에 젖은 가족 이기주의 극복’에 대한 글을 청탁받은 일이 있다. 그동안 필자는 가정상담사역 교수로 복된 가정이 되도록 ‘행복한 부부’와 ‘건강한 자녀’를 강조해왔지만 ‘가족 이기주의 극복’이란 주제에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못했었다. 이를 계기로 가정의 사회적인 책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근본적인 사회문제는 가족 에고이즘이다. 이는 핵가족을 넘어 모든 집단, 공동체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되었다. 한국교회와 기독인 또한 이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편승하고 조장한다는 공감대가 넓다. 결국 우리의 가족주의는 내 자식 중심의 고액 과외나 조기 유학으로 나타나고, 혈연 중심의 재벌 경영 그리고 이기적 정파 정치로 번져있다.
지금 남한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북한은 사회주의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남한은 혈연과 물질에 젖은 이기적 가족주의가 만연하여 자본주의를 통한 개인주의와 기능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긍정적인 면을 만끽하면서도, 평등주의에 입각한 윤리적 과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빈부 격차, 파산자 그리고 분배 불공평이라는 부정적인 면에 직면하여 경제적 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심리학에 ‘원숭이 손’과 ‘태내관성(胎內慣性)’이라는 재미있는 용어가 있다. 원숭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병 속의 먹이를 잘 찾아낸다. 그러나 병목에서 손을 빼려면 움켜쥔 먹이를 포기해야 하는데, 욕심 많은 원숭이는 목숨을 걸고 먹이를 놓지 않는다. 그래서 ‘원숭이 손’이란 움켜쥘 줄만 알고 손을 펴서 줄 줄은 모르는 이기주의를 상징한다. 그런데 사람이 ‘원숭이 손’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문제이다.
‘태내관성’이란 사람이 위급한 상황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팔다리를 움츠리는 모습을 말한다. 사람은 위급할 때 손을 벌리지 않고 움켜쥔다. 이는 어머니 모태에서 10개월 동안 고착된 모습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다. 사람이란 이처럼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움켜쥐기’만 하는 악성 이기주의자라는 의미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 이어 계속되는 유럽 재정위기는 세계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위기를 극복하더라도 다시 경기 침체에 빠지는 더블딥(Double Dip) 가능성을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강하다.
금융계가 큰 위기를 겪었는데도 여전히 과도한 성과 보상 및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선호 등의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는 금융계만이 아니다. 정권 말기에 반복되는 측근 비리가 또다시 드러나고 있다. 교육 현장과 군수산업 등의 비리는 지금 이 사회의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베버(M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는 개신교 윤리의 근간인 ‘청지기 정신’과 ‘절제 정신’이라는 토양에서 자랄 수 있는 나무라고 보았다.
이제 누군가는 청지기 정신과 절제 정신, 도덕 회복을 말해야 한다. 복지 포퓰리즘이 아닌 근검절약을 호소하는 정치가가 나타나야 하며, 절약과 금식을 강조하는 개신교 윤리가 회복되어야 한다.
필자가 아는 한 분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방학 때마다 세 끼를 금식한다고 한다. 금식 후 식사기도를 하는데, 너무 배가 고팠던 아이들이 울면서 “하나님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더라고 한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 병든 자본주의는 청지기 정신과 절제 정신을 훈련하는 가정에서 치유되기 시작하는 법이다.
<서울신대 교수·가정상담사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