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자활 위한 서울영농학교, 첫 수확물 판매나서 “흙에서 키워낸 희망을 팝니다”

입력 2012-07-12 19:49

12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후생동 앞. 노숙인 김진수(68·가명)씨가 연신 땀을 훔치며 “감자 사세요”를 외쳤다. 김씨는 “최근 가뭄이 극심해 제대로 수확할 수 있을까 마음을 졸였다”면서 “어려움 속에서 키우다 보니 감자가 자식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시가 노숙인 자활 교육을 목적으로 지난 4월 설립한 서울영농학교 1기생이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이 영농학교에서는 현재 노숙인 40여명이 채소·버섯·화훼·특용작물 재배 등 각종 영농기술을 배우며 자활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날 판매한 감자는 이 영농학교의 첫 수확물이다. 노숙인들이 지난 3개월간 친환경 무농약 농법으로 정성껏 가꿨다.

김씨는 15년 전만 해도 서울의 한 대형 음식점 사장이었다. 갈비를 팔았는데 장사가 제법 잘됐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도산했다. 집과 가게는 경매로 넘어갔고 5년 뒤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도 결혼 후 소원해지면서 갈 곳이 없게 되자 김씨는 2011년 초 노숙을 시작했다. 서울역과 영등포·종로 일대를 떠돌며 술과 도박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영농학교 설립 기사를 보게 됐다. 김씨는 “아무런 희망 없던 그때 영농학교는 한 줄기 빛이었다”고 회고했다.

노숙인들이 재배한 감자는 인기가 높다. 이번에 수확한 1400㎏ 분량을 13일까지 이틀에 걸쳐 판매할 예정이었으나 시청 공무원이나 사회복지단체 등에서 선주문으로 1000㎏을 구매할 정도다. 이날 현장에 갖고 나온 나머지 400㎏도 판매 시작 1시간30분 만인 오후 1시쯤 모두 팔렸다.

김씨는 “영농학교에 온 뒤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희망이 생겼다”면서 “하루 빨리 농촌에 자리를 잡아 아들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는 앞으로 영농학교 교육생들이 재배한 토마토 호박 고추 등 채소 10여종과 땅콩 참깨 특용작물도 추가 판매할 계획이다. 수익금은 전액 교육생의 졸업 후 귀농자금으로 쓰인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