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헬기’ 환자 100명당 4.4명 살렸다
입력 2012-07-12 22:13
지난달 23일 낮 12시59분 인천시 구월동 가천대길병원 옥상. 기관지에 관을 삽입한 채 들것에 누운 4세 K양이 헬기에서 내렸다. 1시간56분 전인 오전 11시3분, K양은 강화도 펜션 수영장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심장이 멈췄다. 심폐소생술로 심장은 되살렸지만 인근 강화병원에서는 K양에 대한 본격적인 치료가 불가능했다. 가천대길병원의 ‘닥터 헬기’가 43㎞ 떨어진 강화병원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22분. 헬기를 타고 온 응급의료진은 현장에 도착한 즉시 K양의 기관지에 관을 삽입하고 산소를 주입했다. 5일 뒤 K양은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서 퇴원했다.
심장 이상이 아닌 다른 이유로 심박이 정지된 환자 중 살아서 병원을 나가는 사람은 200명당 1명꼴(생존 퇴원율 0.5%)이다. K양이 행운의 1인에 포함된 건 헬기 덕분이었다.
조진성 가천대길병원 교수는 “앰뷸런스로 옮겼으면 60분은 더 걸렸을 것이다. 아이는 10분만 늦었어도 살지 못했다. 의료장비를 갖춘 헬기가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말했다. K양의 부모는 “아이가 두 번째로 태어났다. 6월 23일이 아이의 새 생일”이라며 고마워했다.
닥터 헬기는 교통이 불편한 지역의 응급환자를 위한 이송용 헬기다. 기존 119헬기와 다른 점은 응급의료진이 의료장비가 갖춰진 헬기를 타고 직접 환자를 이송한다는 점이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 하늘에서부터 전문의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날아다니는 응급실’이라고 불린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1년 도입됐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9월 가천대길병원과 목포한국병원에 각 1대가 도입돼 시범 운영되고 있다. 12일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는 시범운영 중인 두 대의 닥터 헬기에 대한 평가 보고회가 열렸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 10일까지 총 287번 출동한 닥터 헬기는 섬 지역 환자의 이송 시간을 평균 20분으로 단축시켰다. 상황발생 후 곧바로 선박이 투입된다고 가정해도 평균 102분인 이송 시간을 82분이나 줄인 것이다.
사망 예방률은 더 높았다. 환자 173명을 분석한 결과 닥터 헬기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사망했을 환자는 32.9%, 사망 가능성이 중간 정도인 경우도 35.8%로 조사됐다. 무려 68.7%가 닥터 헬기 덕분에 생명을 건진 셈이다. 이를 외상환자로만 한정해도 100명당 4.4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헬기 2대의 유지비는 연간 64억원 안팎이다. 헬기 한 대가 살릴 수 있는 목숨을 100명당 4.4명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의 생명 1년을 연장하는 데 1185만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임정수 가천대길병원 국책사업단장은 “외국 사례와 비교해도 비용 대비 닥터 헬기의 효용은 매우 높았다. 지속적인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올해 안에 도서 및 산간 지역 2곳에 2대의 헬기를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