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름값 인하 정책에 정유업계 “못 살아” 소비자 “엄살 말라”

입력 2012-07-12 22:06


실적 악화로 울상인 정유업계가 정부의 기름값 인하 정책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에 시달리다 모처럼 한숨 돌린 소비자들은 정유사들의 불만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유사들이 고유가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때는 가만히 있다가 기름값을 약간 내리자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12일 정유업계와 증권사들에 따르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던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지난 2분기 정유 부문에서 모두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됐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원유를 들여와 휘발유나 경유 등 완제품이 되기까지 40일 이상 걸리는데 이 기간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원가는 높고 제품가는 싸지는 적자 사업구조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특히 최근 들어 일본 석유제품 수입이 크게 늘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이달부터 수입석유를 전자상거래를 통해 판매할 경우 수입할당관세 3% 면제, ℓ당 16원 환급, 바이오디젤 혼합의무 면제 등 ℓ당 50원가량의 세제 혜택을 주기로 하자 석유류 수입업자들이 발빠르게 일본에서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이데미츠, JX에너지(JX Nippon Oil) 등 일본 정유사들이 지난 5월부터 매달 3만t(22만 배럴)의 경유를 한국 수입상을 통해 수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유업계와 전문가들은 원유 수입에 3%의 관세를 매기고 수입석유는 무관세를 적용하는 정부의 기름값 인하 정책은 외국 정유사와 수입업자들만 배불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제품의 질도 떨어지는 일본산 석유제품을 억지로 수입하게 하게 정책”이라며 “결국 업체들로부터 세금이 덜 걷힌 만큼 국민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수입석유에 대한 세제 혜택이 정유사 독과점 구조를 깨고, 이로 인한 가격인하 혜택이 소비자 가격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들도 더 이상 정유사들의 봉 노릇만 할 수 없다며 스스로 공급자가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정유 4사의 독과점 폭리 막겠다’며 출범한 국민석유회사 설립준비위원회는 지난 11일까지 20일 동안 최소 1주(1만원) 이상 약정을 받는 형식으로 시작된 캠페인에 300억원 가까운 준비금(약정액 기준)이 모였다고 밝혔다. 설립준비위는 준비금이 500억원까지 모이면 각계 인사들과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뒤 정부에 국민석유회사 설립 허가를 촉구할 예정이다.

설립준비위 관계자는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은 그동안 기름값이 치솟는 데도 실적 잔치를 벌인 정유사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