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체포안 부결 후폭풍] ‘정치’에 발등 찍힌 박근혜… 기재委 첫 회의도 안나와
입력 2012-07-12 22:19
‘수첩공주’란 별명이 붙을 만큼 꼼꼼한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빼먹은 게 하나 있다. 대통령의 신년연설처럼 국정운영 기조부터 경제, 복지, 교육, 북한, 외교, 정부 개혁 방안까지 세밀하게 언급했지만 ‘정치개혁’ 구상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이 지난해 10·26 재·보선에 패하자 개혁하겠다며 비대위원장을 맡았고, 그 비대위가 쏟아낸 온갖 정치개혁안을 관장했던 그가 정작 자신의 대권 비전에선 이 대목을 뺐다.
그리고 불과 하루 만인 11일 박 전 위원장은 ‘정치’에 당했다. 비대위원장을 할 때 공천받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거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는 ‘박근혜 비대위’가 의결한 국회 쇄신안 1호였다.
박 전 위원장은 12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첫 전체회의에 불참했다. 특히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참석한다던 계획이 갑자기 바뀌었다. 국회에도, 캠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상일 캠프 대변인은 “공식 일정이 없다”고만 했다. 예기치 못했던 체포동의안 부결이 그만큼 충격을 줬다는 얘기다. 13일로 예정됐던 대구 방문 일정도 오후 늦게 연기됐다. 조윤선 캠프 대변인은 “의원총회가 열리는 날 현장에서 공약을 발표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어 잠정 연기했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의 의총 참석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경선을 ‘정치 드라마’가 아닌 ‘정책 드라마’로 치르겠다던 캠프 입장도 난처해졌다. 박 전 위원장의 독주로 경선 흥행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연쇄 정책 발표로 분위기를 띄우려 했으나 체포동의안 사태가 당분간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게 됐다. 캠프에서 딱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없어 더욱 고민이다. 한 관계자는 “현재는 의총 등 진행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당도 하루 종일 뒤숭숭한 모습이었다.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정 의원에게 자진출두 형식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도록 권고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한 최고위원은 “전날 긴급 심야회의에서 그런 결론을 냈고 정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의총에서 원내지도부 총사퇴 대책을 마련키로 했지만 이한구 원내대표 재신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사퇴를 반려하자니 더 큰 역풍이 우려되고, 후임을 찾기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다시 쇄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 다른 대책이 뭐 있겠느냐”고 말했다.
원내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친박근혜계 한 의원은 “민주통합당의 전략적 반대표가 예상됐는데 지도부가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한 건지 의심스럽다”며 “그동안 세비 반납 등 국회 개혁에 앞장선 일들이 부결 사태로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의원도 “민주당은 일사불란한데 우리는 모래알”이라며 “이래서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현길 백민정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