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외계인의 지구 탐사 일지… 에두아르도 멘도사 출세작 ‘구르브 연락 없다’

입력 2012-07-12 18:39


“나는 내가 원하면 지구인의 인체를 구성하는 분자구조에 맞추어 내 몸을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어떤 모델을 선택했을 경우에는 극도로 신경을 써야 한다. 도중에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작정을 하고서 변신까지 했는데, 내가 원하는 행복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104쪽)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한두 해 앞두고 두 외계인이 스페인에 착륙한다. 이들은 생김새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해 지구의 생활형태를 탐사하려 한다. ‘나’는 동료 구르브에게 착륙 지점 일대의 탐사를 일임하는데 구르브는 스페인의 유명 여가수 마르타 산체스로 변신해 탐사에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된다.

스페인 작가 에두아르도 멘도사(69)의 출세작 ‘구르브 연락 없다’(민음사)는 유별난 소설이다. 외계인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주인공이 지구의 낯선 대도시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는 바를 거의 분 단위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문장은 현재형이다. 그래서 마치 외계인과 함께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것 같은 현장감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외계인의 눈에 비친 지구인의 생활은 어떤 것인가.

“11일 21:00 지구인들은 여러 범주로, 특히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모양이다. 그 이유는, 나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 중 하나다. 내가 보는 부자와 빈자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이런 것 같아. 부자들은 그들이 가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무리 많이 손에 넣거나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돈을 내지 않는 반면, 빈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돈을 낸다.”(21쪽)

“13일 21:30 나는 호텔 근처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고깃덩어리를 대충 분석해 보니, 거세한 소, 당나귀, 아라비아 낙타, 코끼리(아시아산과 아프리카산), 비비, 누, 메가테리움이 들어 있고, 말파리 잠자리, 배드민턴 라켓, 너트, 병마개, 자갈, 극소량의 이물질까지 섞여 있다.”(48쪽)

외계인의 일기라는 설정 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주인공의 좌충우돌하는 행동과 생각을 한 꺼풀 벗겨보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떠오른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부조리와 부패, 인종 문제 등에 대한 풍자인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화자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일방적으로 풍자하는 데 그치는 건 아니다. 내부 공사 중인 미술관과 박물관, 비둘기들이 똥을 싸지르는 국립공원, 인테리어 상을 받은 술집, 미식가가 쓴 책에 나오는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준비로 시끌벅적한 대도시의 속살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을 접하고 나면 이 소설은 유머러스하고 다정다감한 바르셀로나 여행 에세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방인의 눈에 비친 지구와 지구인들의 삶은 복잡하고 지저분하며 모순덩어리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구르브와 ‘나’는 결국 지구에 남는다. 바르셀로나 출신인 멘도사의 고향 사랑이라고나 할까. 멘도사는 바르셀로나를 조롱하면서도 그곳만의 매력과 가치를 이 소설을 통해 제고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바르셀로나에 바치는 오마주인 셈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