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락한 도시 열다섯 살 소년들, 인생 태풍과 맞서다… 임수현 첫 장편소설 ‘태풍소년’
입력 2012-07-12 18:39
이 소설은 기존 성장소설의 패러다임을 따르지 않는다. 성장소설의 기본이라 할 소년들이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들은 학교에 다니며 교양을 쌓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2008년 ‘문학수첩’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젊은 작가 임수현(36)의 첫 장편소설 ‘태풍소년’(문학과지성사)은 제목이 암시하듯 성장기의 태풍과 정면에서 맞서 싸우는 열다섯 살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먼저 소설의 무대가 되는 퇴락한 관광도시 ‘닻섬’의 환경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육점골목’이라 불리는 홍등가를 배회하는 소년들은 투견처럼 피를 흘리며 격투를 벌이고 도박꾼들에게 돈을 받아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그 안에 섞이지 않는 유일한 소년이 강우이다. 엄마는 섬을 떠났고 아빠는 정육점골목 식당 수선화에서 미라언니와 동거하게 되면서 강우는 텅 빈 횟집 건물에서 홀로 살아간다. 그렇다고 자기 연민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주위 사람과 사물들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강한 자아의 소유자이다.
강우가 주변의 소년들에게 붙여준 별명들은 한결같이 야생적이며 원초적인 본능을 닮았다. 흙, 똥, 걸레, 바람, 쥐, 코 등등. “똥이 낮달처럼 숨은 강우의 기척을 느꼈는지 푸른등대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강우는 그 시선을 파하지 않았다. 똥은 무심한 척 시선을 내려뜨리고 수조를 빠져나가려는 갈매기를 라면 상자로 가로막았다. 나머지 소년들은 그물코가 터진 뜰채와 각목을 들고 틀만 남은 수조 모서리를 꽝꽝 두드렸다. ‘전염병 옮아라, 전염병 죽어라’”(37쪽)
한때 홍등가에 퍼진 에이즈와 구제역으로 인해 소년들은 이렇듯 ‘전염병 옮아라, 전염병 죽어라’를 외치는 이른바 ‘전염병축제’ 놀이를 하며 몰려다닌다. 그만큼 거친 공간인 닻섬은 이들 소년의 세계와 삼촌, 엄마기계, 아빠백작 등으로 불리는 어른의 세계로 양분된다. 그러나 닻섬의 소년들은 성장을 요하는 덜 자란 어른이 아니다. 그들은 소년이라는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그려진다. 오히려 어른들의 세계가 소년들에 비해 미숙하다.
소설은 어른이 되기 전, 딱 한 번 벌어지는 시간의 틈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생에서 딱 한 번 불어오는 태풍에 관한 이야기이다. 임수현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나는 자주, 가끔 기실 부모에 기생하면서도 허영에 들떠, 아무 노력도 않고 시간만 재촉하는 소년에 흠칫한다. 나는 그 소년이 밉고, 전혀 안쓰럽지 않다. 이 소설은 아마 그런 마음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