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배신의 계절

입력 2012-07-12 18:40

우리나라에서는 정권 말이 되면 대통령 측근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역대 정권마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 정권 초에는 대개 전 정권의 잔챙이들이 걸려들 뿐이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당대 정권의 거물이 서서히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의 ‘귀빈’이 된다. 이유가 뭘까.

정권 초에는 권력의 서슬에 눌려 검사들이 권력형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다가 대통령이 레임덕에 걸린 말년이 되자 그동안 모아둔 첩보를 꺼내 수사에 활용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수사 검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현실은 정반대다. 말년에는 권력자들의 비리제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고 한다. 권력층에 용돈을 대주고 기생해온 업자들이 단물을 다 빨아먹은 뒤 본전 생각이 나 배신의 칼을 든다는 것.

다른 사람의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배신이 없다면 사실상 특수수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오래된 정설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득 전 의원 사건도 저축은행 회장의 결정적인 진술이 없었다면 수사가 힘들었을 것이다. 세탁된 현찰이 오가는 뇌물 현장에서 말이 쉬워 계좌추적이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정적인 한방은 역시 뇌물공여자의 배신밖에 없다.

배신을 유도하는 검찰의 노하우도 있다. ‘측근을 무력화해 강적을 제거하라’는 청나라 옹정제의 비법이 바로 그것. 늑대가 순록을 사냥하는 모습에서 착안한 이 방법은 병들고 약한 순록을 집중적으로 물어뜯어 저항 의지를 꺾은 뒤 먹잇감을 모두 차지하는 것이다. 핵심 참모인 보좌관을 구속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정권 말에 권력층에 빌붙어 살다 모든 것을 다 불고 감방에 가는 사람들이야 한때 실세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잘나간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배신당한 국민은 허탈한 마음밖에 없다. 모든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을 순진하게 믿고 표를 몰아줬더니 돌아온 것은 약속 위반뿐이다. 설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는 자리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가 설정된다고 한다. 얼굴 보고 마주 앉은 사람끼리는 경쟁관계나 대립관계다. 따질 때나 수사 받을 때의 위치다. 바로 옆에 붙어 앉는 자리는 동료애를 느끼는 곳이다. 연인이나 부부끼리는 옆에서 다정히 손잡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등 뒤는 뭘까. 바로 배신의 자리라고 한다. 국민들에게 등을 돌리는 정치인들이 적어야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아니겠는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