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박순영] 행복하십니까?

입력 2012-07-12 18:42


어떤 사람이 인도를 여행하던 중 노점에 맘에 드는 민속 공예품이 있어 값을 물어 보았더니 1000루피(4만원)라 하였다. 부르는 대로 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을 만큼 맘에 들었지만 인도에서는 터무니없이 값을 깎으라는 누군가의 충고가 생각나 “10루피만 합시다”라고 흥정을 시작하였다. 힘들고도 재미있는 흥정의 결과 놀랍게도 70루피에 그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돌아서는 그에게 상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복하세요?”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그에게 노점상은 말했다. “그렇게 싼값으로 맘에 드는 물건을 사서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체감온도처럼 마음에 달려

세계 속담 사전에는 ‘행복’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는데 어떤 문화에서도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라는 뜻이리라. 미국은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권’을 헌법에 밝혀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행복하십니까?”하고 묻는 말에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최근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을 대상으로 국민의 총체적 삶의 질을 분석한 결과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0점 만점에 4.20을 받아 32위였으며, 소득환경과 생태의 유지 가능성, 사회 네트워크 안정성은 최하위인 34위였다. 2009년 영국 신경제재단(NEF)에서 조사한 결과 1인당 국민소득이 6500달러인 코스타리카가 1위였고 미국은 114위, 한국은 143개국 가운데 68위였다. 1998년 런던정경대학(LSE)의 비슷한 조사에서는 방글라데시가 1위였다.

추위에 대한 온도계 눈금과 체감온도는 다를 수 있듯이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이나 소득수준과 별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국 속담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고, 고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 속에 있는 신경전달물질 가운데 행복물질은 엔도르핀(도파민)이 아니라 세로토닌이라고 한다. 연인이 뜨거운 포옹을 하는 순간의 격정은 엔도르핀으로 인한 환희지만, 포옹이 끝나고 햇볕 잘 드는 창가에서 두 손을 잡고 마주보는 순간, 그제야 아련히 밀려오는 기분이 행복이며 이때 분비되는 물질이 세로토닌이라 하였다.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감사’인데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다”고 했다. 탈무드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감사함으로 이루어지는 것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해 창조주를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다’고 하였다(롬 1:24). 감사하지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현세 심판이 ‘버려두심’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라고 권면하였다(살전 5:18).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곧 “행복합니다”라는 고백에 다름이 아니기에.

“봄이면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이 그리도 고운 줄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지는 해 함께 바라봐 줄 친구만 있다면 다른 건 바랄 게 없어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양희은·인생의 선물)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신 33:29)

박순영 장충단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