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3) 언어로 우려낸 진짜배기 공룡 사골탕… 시인 박장호
입력 2012-07-12 18:39
시인은 대개 두 개의 관문을 통과하기 마련이다.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등단도 어렵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첫술을 뜬 것이다. 밥 한 사발(첫 시집)을 다 먹어치운 후 트림까지 해야 비로소 프로가 되는 게 문단의 불문율이다. 애면글면 따지자면 등단보다 첫 시집을 묶을 때가 더 어렵다.
2003년 ‘시와 세계’로 등단한 박장호(37) 시인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말수가 적다. 그래서 가끔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언어 생략의 습관 때문이다. 그는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자신이 말한 단어와 다른 사람들이 말한 단어가 좀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만의 언어 체계가 따로 있다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이는 ‘시란 이러이러해야한다’거나 ‘주제가 드러나야 한다’는 등의 천편일률적인 창작 기법에 대해 저항의 일종이다.
첫 시집 ‘나는 맛있다’(2008)를 펴냈을 때 “놀랍도록 남성적이고 직설적으로 강한 스파크의 세계”라든가 “맑은 청력으로 모두가 놓친 말 한마디를 홀로 귀에 담아놓을 줄 아는 시인”이라는 평을 들은 것도 자아의 아이러니라는 그만의 직관에 기인한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날리는 말이 있는 셈인데 이를 두고 그는 ‘자아의 아이러니’라고 귀띔했다.
언어적 민감성이 빚어낸 ‘자아의 아이러니’
문자가 가벼운 시대에 더 빛나는 詩語들
“고장난 자동차는 몰아본 사람들은 안다/ 목적지를 가진 운행의 아픔에 대하여/ 창문이 열리지 않는 진동의 공간/ 교통방송은 착신되지 않고/ 카스테레오는 도돌이표만 재생한다/ (중략)/ 유턴 푯말만 있는 도로/ 끝내 추락할 수 없는 질주/ 그 멀미에 대하여/ 목적지를 잃어본 사람은 안다/ 달리는 차 안에 있는 고통에 대하여”(‘내 마음의 스키드 마크’ 부분)
그에겐 내부에 갇혀 혼자만의 생각을 공글리는 그만의 언어 스타일이 있다. ‘목적지’라고 말하지만 그 목적지는 지도에 있는 어떤 지점이 아니라 언어의 목적지인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언어로 말할 때 그는 그 언어 자체에 대해 말한다. 그는 언어에 민감하다. 민감함은 첫 시집 제목과도 관련된다. “시집 제목이 문제였다. 내 시엔 아이러니의 상황이 많이 등장하니, 있을 수 있지만 있을 수 없는 ‘공룡 사골 전문점’을 내정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제목으로 착상한 시가 완성되지 않아 결국은 수록 시 가운데 한 편인 ‘나는 맛있다’를 표제로 달게 됐다. 그는 3년 뒤인 2011년 월간 ‘현대시학’ 9월호에 한 편의 시를 발표한다.
“나는 공룡을 재료로 식당을 차렸다/ 입구엔 공룡 사골 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개업과 동시에 소문이 돌았고/ 사람들이 줄지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귀마개를 하고 있었다/ 소리가 차가운 시대였다/ 식당 안엔 뿔테안경을 쓴 잡상인이/ 사전 속의 낱말을 파느라 분주했다/ 문자가 가벼운 시대였다/ 문장 밖의 나는 키보드를 눌러 잡상인을 쫓았다/ 식당에 순수한 주문과 접수의 시간이 왔다/ 공룡의 뼈를 우려낸 탕이 식탁에 전달되었고/ 탕 속엔 지워지는 주둥이가 건더기로 떠 있었다”(‘공룡 사골 전문점’ 부분)
진짜 공룡(언어)은 없고 출처 불명의 언어적 괴물만 난무하는 이 시대에 그는 진짜배기 공룡 사골탕을 팔고 싶은 것이다. ‘개업과 동시에’ 손님(독자)들이 공룡 사골(시)을 시식하려고 들어선다. 이때 뿔테안경을 쓴 잡상인(시인)은 손님들에게 낱말들을 사고파느라 분주하다. 나(출판사)는 팔리지 않는 시인을 문밖으로 내쫓는다. 그리하여 공룡 사골탕엔 지워지는 주둥이만 건더기로 떠 있다.
산문 ‘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빗방울’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 세상에는 시인이라는 말만 있을 뿐, 시인이라는 존재는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시인이 많을 리가 있겠는가.” 박장호는 시라는 진짜 공룡의 사골탕을 우려내고 싶은 것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