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극장 가득한 라보엠 열기… 8월엔 한국무대 달군다

입력 2012-07-11 18:31


유서깊은 佛 오랑주 페스티벌 현장을 가다

“자신을 단단히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이 오페라의 불길이 살짝 닿기만 해도 넋을 빼앗기게 된다.”(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 드뷔시가 옳았다. 오페라 ‘라보엠’이 뿜어내는 불길은 강렬했다. 한여름 밤, 약 2000년 전 지어진 고대 원형극장 야외 오페라를 보러 온 관객들은 무대가 텅 빈 후에도 한동안 감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10일 저녁 9시45분(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 오랑주의 야외극장에서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의 막이 올랐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회인 오랑주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다. 1869년 시작된 오랑주 페스티벌은 매년 유명 오페라 두 편씩을 상영하는 데 올해는 푸치니의 ‘라보엠’과 ‘투란도트’가 공연 중이다. 예년처럼 이 공연도 현지 TV로 프랑스 전역에 생중계됐다.

공연이 열린 고대 원형극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야외 음악당. 인구 3만명에 불과한 오랑주의 명소이다. 지름 103m, 높이 37m에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으로 계단식으로 돼 있다. 전면에는 두께 1.8m의 벽면이 있어 여기에 영상을 쏘아 무대효과를 낸다.

이날 공연은 다음 달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 무대에 오를 ‘라보엠’의 시험무대였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정명훈 예술감독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남자 주인공 로돌포 역의 이탈리아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35)가 같은 무대에 서는데다 이 공연의 현지 제작진이 한국을 그대로 찾기 때문이다.

‘라보엠’은 1830년대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아름답고 병약한 여성 미미의 애정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공연에서 배우들은 마이크 없이 공연했지만 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잘 전달됐다. 큰 소리로 부르는 아리아는 쩌렁쩌렁 울렸고, 조용한 음악도 문제없이 관객에 전달됐다. 2003년 ‘투란도트’ 공연이 열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운동장 오페라’보다는 확실히 집중력이 높았다. 다음 달 한국 공연도 마이크 없이 진행된다.

그리골로는 ‘제2의 루치아노 파바로티’라 불리는 테너. 미성에 감성적인 목소리와 빼어난 외모,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쇼맨십까지 두루 갖춘 기대주로 평가받는다.

야외 오페라의 무대 장치는 화려한 실내 공연보다는 조촐하고 단조로운 느낌을 줬다. 무대가 개방돼 있다는 특성상 4막에서는 아예 제작진이 관객이 보는 앞에서 소품을 실은 수레를 끌고 나와 무대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내 공연장보다 훨씬 길쭉한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 눈길을 끌었다. 예를 들면 1막에서 로돌포의 집 옆에 뜨개질하는 미미의 집이 같이 나오고, 3막에서는 미미가 찾아오는 가게의 내부까지 그려진다. 그동안 상상에 그쳤던 공간이 살아난 것이다. 2막에서는 130여명이 동시에 무대에 선다. 바람에 여주인공의 치마가 날리고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모습까지 보이는 것은 야외 오페라만의 매력이다. 현장에서 만난 정 감독은 “이곳은 야외공연장으로 탁월하다. 소리가 세종문화회관보다 낫다. 하늘이 열려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라보엠’ 국내 공연은 오랑주 야외극장과 거의 비슷한 규모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8월 28·30일, 9월 1·2일 열린다. 미미 역으로 명성을 떨친 루마니아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47)와 그리골로가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기대감을 높인다.

오랑주(프랑스)=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