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온 외로움, 쌓이는 그리움… 연도교로 하나된 신안 도초도&비금도
입력 2012-07-11 18:05
섬이 그리운 계절이다. 육지와 떨어져 홀로된 섬은 고독과 낭만의 현장이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는 섬은 처절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1004개의 고독과 낭만이 조개껍질처럼 널려있는 전남 신안 앞바다의 도초도와 비금도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연도교로 하나가 된 형제섬. 그곳에는 염부(염전 종사자)의 구슬땀이 소금꽃으로 피어나는 염전과 하트 모양의 해누넘 해변 등 섬마을 풍경이 두루마리처럼 펼쳐진다.
‘형제의 섬’ 도초도와 비금도로 가는 길은 호수나 다름없다. 바다가 섬을 품고 섬이 바다를 품은 신안군은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천사의 섬’으로 불린다. 목포 여객선터미널을 출항한 쾌속선이 팔금도와 안좌도 사이의 해협을 달려 도착한 섬은 해안선 길이가 마라톤 코스 길이와 비슷한 도초도(都草島).
당나라 무역상들이 지형이 수도인 시안과 비슷하고 초목이 무성해 ‘도초(都草)’로 명명했다는 섬의 중앙은 신안군에서 가장 넓은 고란평야. 사면이 바다인데도 어업보다 농업이 발전해 도초도의 밥상은 해산물보다 농산물이 더 풍성하다. 그렇다고 해산물이 빈약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도초도가 자랑하는 관광자원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시목해변. 주변에 감나무가 많아 ‘시목(?木)’으로 명명된 해변은 물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데다 반원형의 산에 둘러싸여 아늑하다. 해당화가 만발한 시목해변의 백사장은 길이 2500m에 폭 100m.
모래알이 밀가루처럼 고운 시목해변 백사장은 맛조개를 비롯한 온갖 조개들의 보고. 맛조개가 사는 모래 구멍에 맛소금을 뿌리자 신기하게도 새끼손가락 굵기의 맛조개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순진한 맛조개가 맛소금의 짠맛을 바닷물이 들어 온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맛조개와 숨바꼭질도 하고 해수욕도 즐기다 지치면 해송숲 몽골텐트에 누워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수를 청하는 것은 시목해변에서나 누리는 호사.
도초도와 비금도를 형제섬으로 만든 주인공은 937m 길이의 서남문대교. 1996년 완공된 서남문대교는 아치형의 연도교로 흑산도와 홍도로 가는 여객선은 모두 이 다리를 통과한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도 서남문대교를 빠져나가면 롤러코스트를 탄 듯 거친 파도가 울렁울렁 춤을 추는 바깥바다. 낙조가 아름다운 서남문대교는 결국 내해와 외해의 경계인 셈이다.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형상의 비금도(飛禽島)는 느낌표와 쉼표가 물새처럼 날아다니는 호젓한 섬이다.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통일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우물을 만들고 기우제를 지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비금도는 원래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9개로 이루어진 섬으로 간척을 통해 하나의 섬이 됐다.
비금도는 우리나라 최초로 주민이 만든 염전으로도 유명하다. 1948년 주민 450세대가 조합을 결성해 보리개떡과 나물죽으로 허기를 달래며 100㏊ 넓이의 염전을 조성했다. 대동염전은 당시 개발된 염전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보존되고 있다. 비금도의 염전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525㏊로 늘어났지만 폐염전이 나날이 늘어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주민이 4000명에 불과한 비금도의 염부(鹽夫)는 대부분 부부.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작업은 바늘에 찔린 듯 따끔거리는 한낮의 뙤약볕보다 수시로 내리는 비를 피해 낮은 지붕의 해주(海宙)에 소금물을 가두는 비설거지. 이렇게 생산된 ‘시간의 앙금’이 허름한 소금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염전이 1950∼60년대에 비금도 주민들에게 부를 안겨줬다면 요즘은 726㏊에서 재배되는 시금치가 비금도를 ‘돈이 날아다니는 섬’으로 만들었다. ‘섬초’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된 비금도의 시금치는 재래종으로 잎이 두꺼워 삶아도 흐물거리지 않아 씹는 맛이 좋다. 9월 하순에 씨앗을 뿌려 이듬해 3월까지 2∼3차례 수확하는 섬초의 수확량은 한 해 6300t으로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
비금도는 ‘신안이 낳은 보물’ 이세돌 9단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신안군 비금면 도고리에서 태어난 이세돌은 교사인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우다 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천재기사로 성장한다. 이세돌 생가 인근에 위치한 ‘이세돌 기념관’은 폐교를 리모델링한 건물. 2008년 준공된 기념관에는 이세돌 자료전시관과 대국장 등이 설치돼 매년 바둑대회가 열린다.
이세돌의 고향마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돌담이 아름다운 400년 역사의 내촌마을은 비금도를 대표하는 마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내촌마을의 돌담은 약 3000m. 바람을 막기 위해 길쭉하면서도 날카로운 막돌로 쌓은 돌담을 따라 키 낮은 지붕들이 옹기옹기 처마를 맞대고 정담을 나눈다.
내촌마을 산등성이에 있는 내월우실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돌담. ‘마을 울타리’라는 뜻의 우실은 신안의 섬 곳곳에서 발견되는 마을공동체 유산이다. 드라마 ‘봄의 왈츠’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 하누넘 해변은 내월우실 아래의 바닷가 비밀스런 곳에서 연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누넘은 ‘산 너머 그곳에 가면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변의 모양도 아름답지만 코발트블루로 대표되는 물빛도 환상적이다. 해질녘 황금빛으로 물든 하누넘 해변에 작은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는 연인들의 밀어처럼 감미롭다. 내월우실 근처의 전망대에 오르면 하트 모양의 해변이 가장 잘 보인다.
비금도에는 하누넘처럼 아름다운 해변이 15개나 숨어 있다. 그 중에는 한 쌍의 연인을 위한 작은 해변도 있지만 명사십리처럼 길이 4㎞가 넘은 거대한 해변도 있다. 수심이 얕은 데다 고운 모래가 아스팔트처럼 단단해 차를 타고 달려도 바퀴자국이 안보일 정도로 단단한 해변은 덤장그물과 후릿그물 체험장.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막대를 박고 그물을 울타리처럼 쳐놓은 덤장그물과 대여섯 명이 200m 길이의 그물을 끌어 물고기를 잡는 후릿그물은 비금도를 비롯한 섬마을의 원시어업 유산. 그물에 걸린 꽃게, 복어, 숭어 등이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한여름의 눈부신 햇살을 반사한다.
신안=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