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시대정신을 담은 로고
입력 2012-07-11 19:02
정치적 상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심벌마크(로고)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깨우친 사람은 고대 로마인이었다. 기원전 102년 로마 집정관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모든 시민이 로마군인이 될 수 있도록 군제를 개혁하면서 건국신화에 나오는 늑대를 제치고 제우스의 상징인 독수리를 천하무적 로마군단의 로고로 세웠다. 이후 국장(國章)으로까지 채택된 독수리는 로마의 영광을 대표했다.
이 로고는 약간씩 모습이 바뀌며 애용됐다. 동로마제국은 아시아와 유럽을 모두 바라본다는 의미로 머리가 둘인 독수리 로고를 만들었다. 교황으로부터 서로마제국 황제 칭호를 얻은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 중부유럽과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신성로마제국 초대 황제로 즉위한 오토 1세, 중세 이후 유럽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합스부르크왕조가 독수리를 국장이나 휘장(徽章)으로 삼았다. 1806년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킨 나폴레옹은 유럽의 유일한 황제라고 주장하며 독수리 로고를 끌어들였다.
러시아에서는 동로마제국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딸과 결혼한 이반 3세 이후 쌍두독수리가 사용돼 2000년 의회에서 국장으로 승인됐다. 왕족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유럽에서 불필요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비난했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국장으로 독수리를 택했다. 하켄크로이츠로 대표되는 나치 제3제국의 국장도 독수리였다.
현대 정치에서 로고는 훨씬 중요해졌다. 19세기까지 정치적 로고는 확립된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로고는 지도자의 비전을 대중에게 제시하는 표현수단이다. 수많은 말과 글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로고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재계에서는 로고가 기업과 상품의 가치를 설명하고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지만 정치적 로고는 시대가 지향하는 정신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대선 캠페인에서 사용한 로고는 미국 선거사에서 독보적이다. 후보의 이름을 평면적으로 배치했던 기존 로고와의 차이가 뚜렷하다. 원 안에 성조기가 연상되는 파란 줄을 세개 넣은 단순한 모양이지만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담아 미국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로고의 중요성에 눈을 돌린 듯하다. 과거 없었던 표절논쟁까지 벌어졌으니 말이다. 작은 로고지만 그 안에 많은 고민이 담겨있기를 바란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